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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 5    - 1990년 -

 

등불을 켜 놓고 길거리에 앉아 있더라는 소문이 내 집에까지 전해진 모양이었다.

중학교에 다니는 딸아이가 이렇게 말했다.

“아버지, 부산에서는 그렇게 하지 마세요. 아버지가 길거리에 앉아 있으면 우리는 얼굴 들고 학교 못 다닙니다.”

나는 딸아이의 목소리가 자꾸만 나를 괴롭혔다.

집 안에 있으면 질식할 것 같았고, 그렇다고 밖으로 나가면 또 어디에 가서 부딪쳐야 할 것인지 눈앞이 캄캄했다.

 

하루는 내 주변에 있던 한 사람이 말했다.

“우리가 당신을 모를 때는 이렇게 힘들게 살지 않았다. 왜 우리의 삶이 이렇게 힘들어졌는가?”

“너희가 나를 모를 때에는 삶의 일을 몰랐고, 너희가 나를 알고부터는 삶의 일을 알게 된 것이다.
농사일을 모르는 자는 땅을 버리면 된다. 그러나 농사일을 아는 자는 땅을 버리지 못한다.”

그러자 옆에 있던 다른 사람이 물었다.

“당신은 왜 편법을 쓰지 않는가?”

“세상의 일 중에는 해야 할 일과 하지 말아야 할 일이 있다. 내가 지금 하고 있는 일들은 편법을 써서 할 일이 아니기 때문에 그 법을 쓰지 않는다.
나고 죽는 일은 자신 속에 있던 일들로 인하여 정해지고, 좋아지고 나빠지는 일은 인과의 법으로 인하여 만들어진다.
내가 외롭고 힘들어도 편법을 쓰지 않는 일은 나 자신과 세상의 일을 위하여 그런 것이다.”

 

나는 갈 곳이 없어서 다시 파고다 공원 앞에 등불을 켜놓고 앉아 있었다.

나는 무관심과 야유와 적대감을 가진 자들을 보며 외쳤다.

“지금 당신들은 무엇을 원하고 있는가?
이 사회는 정치가 병들어 있고 언론이 병들어 있고 경제가 병들어 있고 교육이 병들어 있다. 만일 이런 일을 방치하고 외면한다면 그대들은 그대들의 앞에서 그 결과를 보게 될 것이다. 왜 그대들은 진실과 의를 외면하는가?”

나는 반복해서 목이 쉴 때까지 외쳤다.

그러자 결국 내 앞에는 험상궂은 일들이 생기기 시작했다.

 

나는 아무리 노력해도 내 앞에 있던 사람들의 세상은 구할 수 없다는 사실을 보고 또다시 어디로든지 떠나야 했다.

중국 신문의 어떤 기자가 소개한 대만의 한 교수는 이렇게 말했다.

교수 : 나는 깨달은 자이다.

그래서 나는 그의 말에 대해서 되묻게 되었다.

“당신은 무엇을 두고 자신이 깨달은 자라고 말하는가?”

그러자 상대방이 내 말에 대해 의문을 제기하며 물었다.

교수 : 예지의 능력이 깨달음 아닌가?

나는 그때 이렇게 대답했다.

“멀리 있는 것을 환시 현상을 통하여 본다든가, 보지 않는 일을 예감을 통하여 느끼게 되는 일은 몸과 정신에 이상이 있을 때 나타나게 되는 현상이다.
있는 것을 보고, 있는 것에 대하여 알게 되는 것이 곧 깨달음이다.
깨달은 자의 말은 흐르는 물과 같고 또 어떤 일에도 그 말이 막히는 일이 없으니, 인간을 보면 인간의 문제를 알게 되고, 세상을 보면 세상의 문제를 알게 된다.
그렇다면 당신은 내가 어떤 일을 물으면 그런 문제에 대해서 대답할 수 있겠는가?”

그러자 상대는 나의 말에 대하여 대답하지 않았다.

나는 다시 인간들이 하던 말에 대하여 설명을 했다.

“깨달음이란 누가 깨달았다고 해서 깨달은 자가 되는 것이 아니요, 다른 모든 자들이 부정을 한다고 하더라도 그에게 진정한 깨달음이 있다면 그는 깨달은 자인 것이다.
내가 태어난 한국에서는 중국의 공자를 대단한 성인이라고 가르치고 또 그렇게들 알고 있다. 그러나 그곳에서 태어나고 그곳 사람들과 함께 살아왔던 나는 그렇지 않다고 말한다.
중요한 것은 증거이다. 좋은 가르침은 좋은 사람을 만들고, 좋은 사람들은 좋은 세상을 만들게 된다.
나는 공자의 가르침 속에서 좋은 사람이 나고 좋은 세상이 나는 것을 보지 못했다. 성인은 능히 좋은 사람을 만들고 좋은 세상을 만드는 일을 알아야 한다.
문제를 모르고 답을 말하는 것은 세상일을 어렵게 하는 일이다.”

 

나는 다시 태국으로 갔다.
나는 태국에서 가장 큰 대학의 강단에 서서 여러 사람들과 만나게 되었다.

그들 중에 있던 어떤 자가 사후 세계의 일에 대하여 물었다.

나는 그들의 질문에 대답했다.

“사후 세계의 일은 삶으로 인하여 존재하게 되는 일 중에 하나다. 나는 이런 일을 어떻게 설명하면 여러분들이 이 자리에서 쉽게 이해할 수 있을지 그런 일을 가늠하기가 매우 어렵다. 그러므로 나의 설명에 대하여 이해가 부족할 때에는 서슴없이 질문해 달라. 그러면 나는 나의 설명에 그런 것을 보충해서 말하게 될 것이다.”

나는 강연이 끝나고 나서 사람들한테 물었다.

“누구든지 소원이 있으면 말해 주시오.”

그러자 내 말을 잘못 이해한 사람들이 이렇게 말했다.

“우리는 우리의 일을 남에게서 얻기를 원하지 않는다. 우리는 열심히 일하고 바르게 살면 된다.”

그 말을 듣고 내가 이렇게 말했다.

“그렇다. 사람들이 열심히 일하고 바르게 살면 그것이 가장 좋은 삶이며 좋은 가르침이다. 그러나 내가 여기서 말한 것은 사람들이 지혜가 없이 열심히 일하고 바르게 산다는 일이 쉽지 않기 때문에 그 말을 한 것이다.
그대들이 아직도 세상일을 보지 못하거늘 어찌 마음만으로 그 일을 쉽게 말할 수 있는가? 내 말은 자연과 같고 자연은 곧 진리의 현상이니 나의 약속은 진리와 같다. 그러므로 나의 약속을 얻는 자는 그 약속을 버리지 않는 한 삶과 죽음을 통해 어디서든지 이르게 된다.”

 

나는 제자의 주선으로 방콕에서 이름난 한 고승과 만나게 되었다.

나는 고승을 보고 물었다.

“당신은 무엇을 배우기를 원하는가?”

그러자 그 고승이 대답했다.

고승 : 내가 원하는 것을 모두 내 스승한테서 듣고 배웠다.

“당신의 스승은 아무것도 모르는 자였을 터인데 어떻게 당신에게 알게 할 수 있었는가?”

고승 : 아니다. 나의 스승은 많은 일을 아는 자였다.

“그렇다면 그런 일을 확인하는 일은 매우 쉬운 일이다. 당신은 어떤 일을 스승으로부터 배웠는가?”

고승 : 나는 죽음에 대해서 듣고 배웠다.

“그렇다면 죽음의 일에 대해서 당신이 아는 대로 말해 보라. 그러면 들은 말이 맞는지 틀리는지 확인해 보겠다.”

고승은 나의 말을 듣고 매우 놀라운 표정으로 다시 물었다.

고승 : 당신은 죽은 자의 세계에 대해서도 알고 있는가?

“그렇다. 나는 죽고 태어나고, 좋고 나쁜 일에 대하여 알 수가 있다.”

 

다음날 나는 한 수도원의 원장과 만나게 되었다.

나는 그 자리에서 말했다.

“나는 여래다.”

그러자 수도원의 원장이 그 말을 듣고 말했다.

상대 : 당신은 부처가 아니다.

나는 반복해서 말했다.

“나는 여래다.”

상대는 또다시 ‘당신은 부처가 아니다’고 부인을 했다.

상대가 세 번씩이나 나의 말에 대해 부인을 하자 나는 나 자신이 했던 말에 대해서 설명을 했다.

“나도 여래가 아니기를 원하고 있고, 나도 부처가 되지 않기를 원하고 있다.
사람들은 내가 여래라고 말하면 나를 이상한 사람처럼 보고 아무도 나와 상대하려는 자가 없었다.
그런데도 내가 이곳에 와서 여래라고 하는 것은 내가 여래이기 때문에 여래라고 하는 것이다.
내가 또 사람들을 찾아다니는 것은 내가 사람들을 두고 자랑하기 위하여 찾아다니는 것이 아니요, 세상과 사람이 망하고 있으니 망하지 않은 사람을 어쩔 수 없이 찾아서 떠돌아다니고 있다.”

 

나는 다시 먼 길을 떠나게 되었다.

그러나 나의 발길은 어디로 가도 내가 찾는 자는 만날 수가 없었다.

 

나는 지쳐버린 일행과 함께 고국으로 돌아와야 했다.

나는 내가 하던 일에 대하여 회의를 느꼈다. 과연 이렇게 해서 세상을 구할 수 있는 것인지조차 알 길이 없었다.

나는 그때 제자한테 말했다.

“나는 계란으로 바위를 깨려는 자다. 그런데 바위는 그대로 있는데 계란만 깨어지니 이 일을 어떻게 하면 좋으냐?”

제자는 내가 하는 일을 알고 있기 때문에 나의 고통을 눈치채고,
‘그래도 당신이 아니면 누가 이런 일을 할 수 있겠냐’고 하면서 말끝을 흐렸다.

나는 내가 하는 일이 너무나 힘들어 미치고 싶었지만 미쳐지지 않았고,
타락해 버려야 되겠다고 내 몸의 행동을 아무렇게나 내던졌지만,
작은 실수 하나를 범할 수가 없었다.

아침이 되면 모든 것을 잊었고,
밤이 되면 또 나에게 있는 것들을 잊으려고 몸부림을 쳤다.

 

나는 몇 번을 망설이다가 다시 등불을 들고 거리로 나갔다.

하루는 어떤 여인이 와서 엎드려 세 번을 절하고 나서 나에게 물었다.

여인 : 당신이 하늘에 계시던 천왕이십니까?

나는 그 말에 대답했다.

“나는 세상을 위하여 짐을 지고 온 자다.”

여인이 다시 말했다.

여인 : 내일 제가 스승께서 계신 곳으로 찾아가서 뵈어도 되겠습니까?

여인은 다음날 오전 일찍 내가 머물고 있던 숙소로 찾아오더니
어제와 같이 세 번 절을 하고 ‘당신은 진정 누구냐’고 물었다.

나는 여인의 질문에 나의 진실을 말했다.

“나는 옛날부터 이 시대에 온다고 말이 전해지던 진실한 자이다. 나는 세상을 위하여 무거운 짐을 지고 왔지만, 사람들이 나를 피하니 나는 아무 일도 하지 못하고 길거리에 나앉아 뭍사람들의 조롱이나 받고 있다.”

여인 : 이 나라의 장래는 어떻게 되겠습니까?

“슬픈 일이다.”

여인 : 사람들은 이 나라의 장래가 번성하고 매우 잘 될 것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세상의 일이란 있는 것들에 의하여 만들어진다. 병을 아편으로만 장기간 치료하는 일은 위험한 일이다. 지금 이 나라 사람들은 크게 실수하고 있다.”

여인 : 그런 사실을 왜 그런 일을 하는 사람들에게 알리지 않습니까?

“너는 모르는 말만 하고 있다. 진실에 눈멀어 있는 자들이 무엇을 듣고 무엇을 볼 수 있다는 말인가?”

여인 : 그렇다면 우리는 어떻게 살게 됩니까?

“모든 것은 자업자득이다. 노임을 올리고 물가를 올리며 곡물의 생산량을 줄이고 수출의 길을 막고 정신의 황폐화를 부추기는 일은 곧 그 일이 지옥을 만드는 일이다.”

여인 : 스승께서는 왜 그런 일을 알고 있으면서도 이 민족을 구하지 않습니까?

“너는 이제야 귀한 말을 하는구나. 내가 어찌 이들을 구하려 하지 않았겠는가.
아무리 노력해도 내 말을 듣고 내 말을 아는 자가 없으니 이제는 어쩔 수 없어서 체념하고 있을 뿐이다.”

 

나는 인간들의 내면에 있던 일들을 보고,
인간들이 그 내면에 있던 일들로 인해서 각각 다르게 살게 되는 일을 보게 되었다.

삶이 내면에 있던 일을 만들고 있었고, 내면에 있던 일들이 삶의 일을 만들고 있으니, 예로부터 인간들이 깨달음을 얻고자 하던 내력을 사람들에게 이야기했다.

그러자 사람들이 나의 이야기를 듣고 나서 이렇게 말했다.

“그런 일은 우리가 벌써 다 아는 일이다. 다른 것을 이야기하라.”

그때 나는 이렇게 말했다.

“나는 많은 곳을 여행했고 또 나는 많은 사람들과 만났다. 그런데 정작 내가 물었을 때 아무도 내가 알고 있는 일에 대해서 한 사람도 알고 있는 자가 없었다.
그렇다면 나는 당신들의 말에 대해서도 궁금해진다.
나는 이 자리에서 하나만 물어보고 다른 이야기를 하겠다.
사람들은 진리를 쉽게 말한다.
당신들은 그들이 말한 진리가 어디에 있었으며 어떤 것을 두고 진리라 하던가?”

그러자 어떤 자가 내 말에 대해 질문을 했다.

상대 : 당신은 진리를 아는가?

“그렇다.”

상대 : 그러면 당신이 아는 것을 말하여 보라.

“진리는 있는 것 속에 있고, 진리는 있는 것을 있게 하는 일이 진리다.”

옆에서 다른 자가 그 말을 듣고 질문을 했다.

상대 : 당신은 자신을 대단한 자처럼 내세우고 있다. 그렇다면 당신은 사람들을 위해 어떤 일을 가르치려 했는가?

“나는 양심과 정의와 사랑을 가르쳤다.”

상대 : 그런 일이라면 이미 모든 자들이 다 알고 있는 것이 아닌가?

나는 상대의 질문에 대해서 웃었다.

“사람들은 그런 일을 함부로 안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그러나 실제로 그런 일을 아는 자를 아직까지 한 사람도 만날 수가 없었다.”

 

나는 여행을 하고 있었다.

내 옆자리에는 내 나이쯤 되는 중년의 남자가 앉아 있었다.

무료하던 차에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게 되었다. 나는 내가 본 여행담을 말했고, 상대는 한국의 전설에 대해서 말했다.

내가 여행담을 말하던 중에 태국의 왕사와 인도의 스승이 나에게 묻기를 ‘당신은 무엇을 가르치냐’고 물어서 ‘양심과 정의를 가르친다’고 말했더니 매우 놀라워하더라고 말했다.

그러자 내 말을 듣던 중년의 남자가 하는 말이 ‘그런 일이 뭐 그리 대단해서 한 나라의 스승이라는 자들이 그토록 놀라워했는지 모르겠다’면서, ‘이 나라에는 초등학교 선생만 되어도 그런 일을 가르친다’고 했다.

나는 그 말이 우스워서 이렇게 말했다.

“그래도 그 나라에는 놀라는 자가 있었지만, 이 나라에는 놀라는 자가 없었다.
이 나라 사람 중에 내 말을 듣고 놀라는 자가 없는 것은 양심과 정의에 대하여 아는 자가 없었기 때문이요,
그들이 그 말을 듣고 놀라워 한 것은 그들이 그 뜻을 알게 되었기 때문이다.
양심은 마음을 밝히는 길이요, 정의는 세상을 밝히는 길이다.
마음이 밝고 세상일이 밝다면 사람들의 삶 속에 무엇 때문에 한이 생기겠는가?
이 나라에 양심을 알고 정의를 아는 자가 있다면 왜 사람들의 마음이 그토록 어둡고, 세상의 일들이 어둡게만 느껴지겠는가?”

그러자 그때부터 상대는 나와 이야기를 하려고 하지 않았다.

깨달은 자가 세상에 오는 일은 세상이 가진 희망을 위하여 온다.

그러나 정작 깨달은 자가 세상에 오면 인간들은 깨달은 자를 부정하고 깨달은 자를 해치려 한다.

그래서 깨달은 자는 외롭게 살게 되고 만신창이가 된 자신을 보게 된다.

 

어떤 자가 내 앞에 와서 물었다.

상대 : 당신의 스승은 누구인가?

“천재는 누구에 의해서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다. 스스로 자신 속에서 나오게 된다.”

상대 : 그렇다면 내가 당신의 뺨을 세게 때려도 되겠는가?

“왜 당신은 남의 뺨을 때리려 하는가?”

상대 : 깨달은 자는 뺨을 맞아도 성을 내지 않는다고 했다.

나는 어처구니없는 상대의 말에 대하여 이렇게 대답했다.

“깨달은 자는 있는 것을 보고, 있는 것 속에 있는 옳고 그른 진실을 가르치는 자이지 불의를 보거든 참으라고 가르치지 않는다.
만일 누가 그런 말을 한 자가 있다면 그자는 매우 잘못된 생각을 가지고 있는 자이다. 깨달은 자를 욕보이고 깨달은 자를 해치려 한 인간들이 사는 사회는 스스로 망한다. 내 말을 믿지 못하는 자는 역사를 보라.”

 

나는 어떤 자가 깨달음을 찾고 있다고 해서 소문의 장본인을 찾아간 적이 있다.

그러자 상대는 자신이 알고 있는 것들을 이야기했다.

나는 상대의 이야기를 듣고 이렇게 말했다.

“당신이 하고 있는 일은 꿈속에서 불로초를 찾는 짓과 같다.”

상대 : 그렇다면 역대 조사들의 깨달음은 무엇인가?

“당신은 어떻게 그들이 깨달은 자라고 말하고 있는가?”

상대 : 책에 그런 기록이 있고 또 우리는 그렇게 들었다.

“만일 당신이 책 속에 나온 조사처럼 되기를 원한다면 그런 일은 매우 쉬운 일이다.”

상대 : 그런 일을 당신이 안다면 나에게 좀 가르쳐 줄 수 있는가?

“하나는 의식이 허약해지면 환시 현상이 나타날 때가 있다. 둘째는 자신의 의식을 버리고 다른 의식을 청하여 함께 있게 되면 다른 의식을 통하여 신통술을 부리고 마음을 훔쳐볼 수가 있다. 셋째는 끝까지 자신을 속이면 된다.”

상대 : 그런 일은 진정한 깨달음이 아니다.

“그렇다면 당신은 진정한 깨달음의 길을 찾아야 한다.
먼저 근본의 일을 알아야 하고 다음 바탕의 일을 알아야 한다.
사람이 근본과 바탕의 일을 알게 되면 좋고 나빠지는 일을 알고 능히 자신을 지키고, 자신을 좋은 근본 속의 세계로 이르게 한다.
나의 깨달음 또한 오랫동안 있었던 공덕으로 인하여 그 원인이 된 것이니, 공덕을 지어 놓지 않고 해탈의 깨달음을 얻겠다고 하면 그 일은 불가능하다.”

상대 : 나는 그런 일을 어떻게 알 수가 있겠는가?

“당신이 나에게서 그런 일을 알기를 원한다면, 나는 당신의 친구가 되어서 당신의 일을 도울 수 있다.
먼저 자신이 가진 잘못된 의식을 깨어버리게 되고, 둘째 옳고 그런 일을 알게 되며, 셋째 양심과 용기를 주게 될 것이다.
그렇게 되면 누구라도 공덕을 짓고 자신을 깨우치기가 쉬워진다.”

그러자 그때부터 상대는 두려움을 느끼기 시작했다. 누구도 자신을 속이지 못했다.

나는 이런 일을 보고 웃고 말았다.

 

나는 내가 하고 있던 일에 대해서 회의를 품을 때가 있었다.

과연 나의 노력이 얼마만한 사람들을 찾을 수 있으며 또 얼마나 되는 사람들을 깨우칠 수 있을지 하는 일들을 느끼게 될 때이다.

그날도 길거리에 나가서 앉아 있었다.

한 사내가 내 앞에 나타나서 물었다.

“마약은 사람한테 좋은 것인가, 안 좋은 것인가?”

나는 상대가 질문하는 의중을 몰라 당황하게 되었다.

그러자 갑자기 상대가 입고 있던 바지를 홀랑 내려서 배꼽과 배꼽 밑에 있는 물건을 드러내 놓고 또 몸에 있는 흉터들을 내보였다.

그때 내 곁에 있던 제자 비구니가 사내를 꾸짖었다.

“어디서 이런 무례한 짓을 하는가?”

사내는 제자를 향해 입에 담기 어려운 욕설을 해댔다.

사람들은 그런 일이 재미있는지 금방 주위를 빙 둘렀고 구경만 했다.

주변에 있던 파출소에 도와 달라고 신고를 했더니 이유도 알아보지 않고 죄인 취급을 했다.

내가 그런 일에 대해 항의를 하자 무조건 나의 일행을 경찰서로 넘겨버렸다.

나는 제자 비구니에게 당부를 했다.

“이들 앞에서 시비를 가리지 말아라.”

시비를 걸었던 상대는 경찰서 안에서까지 기고만장했다.
자신은 정신병원에도 있었고, 교도소에도 갔다 온 중독자라고 했다.

경찰관들은 그런 상대를 보면서도 오히려 재미있다는 듯 다른 잡담만 하고 있었다.

그래서 나는 그곳 책임자를 찾아가서 이렇게 말했다.

“나는 이곳에서 시비를 가리고 싶지 않다. 그러니까 당신들 마음대로 하라. 우리는 원숭이가 아니다. 그러니 빨리 내보내 주든가 교도소에 집어넣든가 하라.”

한심한 일은 내가 이런 자들을 위하여 길거리에 앉아서 온갖 수모를 감내하고 있었다는 사실이다.

그릇된 자들은 자신들의 운명을 모른 채 망하는 일만을 원했고, 나는 나대로 힘에 부치는 한계를 느껴야 했다.

 

- 계속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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