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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자    - 1987년~1988년 -

 

나는 깨달음을 얻고 나서 2년이 훨씬 지난 후에야 나의 말에 대하여 관심을 가져주는 비구니 한 사람을 만나게 되었다.

나는 그날도 어떻게 하면 나의 진실이 인간들을 축복할 수 있을까 하는 일을 찾아서 거리를 배회하고 있었다.

그러다가 나는 평소에 소문으로 듣던 한 장소를 찾아가게 되었다. 그곳에는 나보다 먼저 와 있는 사람들이 있었고 또 짧은 시간에 꽤 여러 사람들이 찾아오고 있었다.

나는 그곳 사람이 아닌 나처럼 그곳을 방문한 사람을 붙잡고 물었다.

“여기에 온 사람들은 어떤 사람들인가?”

그러자 내 질문을 받은 사람이 대답했다.

“대부분 병을 고치러 온 자들이다.”

“그러면 병은 어떻게 고치던가?”

“제사를 지내게 하든가 아니면 기로써 치료를 해준다.”

그때 그곳에서 일을 보는 것 같은 건장한 젊은이가 나에게 다가와 물었다.

“당신은 어떻게 왔는가?”

“나는 이집 주인을 만나러 왔다.”

나는 가지고 있던 내 명함을 젊은이에게 주었다.

얼마 후 나는 그곳의 주인과 만나게 되었다.

“나는 이곳에 찾아오는 많은 사람들을 위하여 그들이 원하는 것을 찾아줄 수가 있다. 당신은 세상을 위하여 옳은 일을 한번 해보지 않겠는가?”

그러자 상대방은 매우 불쾌한 어조로 항변을 했다.

“당신이 우리보다 좀 위라고 해서 남의 집에 와서 그런 말을 해도 되겠는가.”
하면서 밖으로 쫓아내었다.

나에게 이런 일은 너무도 흔하게 겪던 일이라 힘없이 그곳을 나오고 말았다.

 

집으로 가는 버스를 탔는데 그때 내가 탔던 버스 안에 한 비구니가 앉아 있었다.

나는 조금 전에 당한 일도 잊어버리고 다시 세상의 일을 그 비구니한테 물었던 것이다.

“당신은 당신 주변에서 진실한 자를 만나본 적이 있는가?”

비구니는 나의 질문을 받고 내 얼굴을 쳐다보았다.

나는 주변에 사람들이 있건 말건 상관하지 않고 내가 하고 싶던 말만 했다.

“나는 경전 속의 비밀을 아는 데 그것을 말할 곳이 없다.”고 했다.

비구니가 자신은 초량에서 내리는데 차 한 잔 하겠냐고 물었다.

나는 처음으로 대접을 받게 된 것이 기뻐서 비구니를 따라 버스에서 내렸다.

버스 정류장 근처에 있는 다방에 비구니와 마주 앉은 나는 내 속에 있던 모든 이야기를 비구니에게 했다.

간간이 비구니가 묻기도 했지만 그런 질문은 모두 나에게는 쉽게 대답할 수 있는 것들뿐이었다.

한참 이야기를 하고 있는데 다방 주인이 가까이 와서 문 닫을 시간이 넘었다고 독촉을 했다. 주위를 살펴보니 다른 테이블에는 손님이 남아 있지 않았다.

나는 혼자서 4시간이나 이야기를 하고도 자리에서 일어나는 것이 아쉬워서 비구니에게 내 집 전화번호가 찍힌 명함을 건네주며 연락해 주기를 바랐다.

 

다음날 아침, 비구니가 전화를 하고 일찍 내 집으로 찾아왔다.

나는 온종일 신나게 내 말을 했다.

비구니는 자신을 두고 승려 사회에서 그들이 쓰는 용어로 깨달았다고 인정을 받은 자라고 말했다. 그래서 나는 그 말에 대해 다시 물었다.

“그렇다면 무엇을 깨달았는가?”

비구니는 명확한 대답을 하지 않았다.

나는 박장대소를 하면서 웃었다.

장님이 장님한테 찾아가서 자신이 눈을 뜬 자인가 눈을 감은 자인가 물었으니,
묻는 자도 우습기 그지없지만, 장님이 장님의 질문에 대답한 것도 우스웠다.

비구니는 그때 내 말에 대해 알아듣고는 자신도 웃었다. 그리고는 질문했다.

“내 마음은 어디에 있습니까?”

“네 마음이 너에게 있지 않은가.”

“그 말은 알지만 내 마음을 볼 수가 없으니 묻는 것입니다.”

“배고플 때 먹고 싶던 것도 마음이요, 미운 자를 때려주고 싶을 때 있던 것도 마음이다. 사람들이 그런 것을 몰라서 구태여 마음을 보여 달라거든 꼬집어주든지 때려주어라. 그러고 나서 이렇게 말하라. 내가 이렇게 하지 않으면 끝까지 내 마음을 보자고 할 것 같아서 그런 것이니 이해하라고 말하라.”

나는 ‘마음’에 있던 것들을 가르쳐 주었다.

“의식으로 인하여 마음이 나고, 마음으로 인하여 행동이 나며, 행동으로 인하여 마음이 지어지고, 마음으로 인하여 의식이 지어지니 곧 의식에 나타나던 것이 마음이요, 행동으로 나타나는 것이 마음이니, 상대의 마음을 보고자 하거든 상대가 하고 있는 일을 보라.”고 했다.

 

나는 비구니 한 사람이 나의 말에 대해 관심을 가져 주자 100만 대군을 얻은 기분이었다.

안타까운 일은 비구니가 나를 얼른 알아보지 못하고 이것저것 시험하려 하는 것이 신경이 쓰였다.

비구니는 평소에 자신이 책 속에서 얻은 지식들을 가지고 질문했다.
노자의 가르침에 대해 물었고 또 부처의 가르침에 대해 물었다.

나는 이렇게 말했다.

“나는 세상에서 최고다. 나와 씨름을 하는 일은 어리석은 일이다. 나를 보고자 하거든 세상에서 가장 뛰어난 자를 찾아서 만나게 하라. 그러면 그때 나를 보게 될 것이다.”

 

하루는 나를 자신의 집으로 초대했다.
자신의 집이라 하는 곳은 비구니의 어머니가 맡고 있던 집이었는데,
실제로는 비구니와 대학 동기생인 어느 초등학교 여선생의 집이었다.

나는 그날 인간의 의식이 최고의 완성을 이루게 되면 나타나게 되는 의통에 대하여 이야기를 했다.

그러자 비구니는 어떤 사람의 이야기를 하면서 상대의 고통을 말했다.
이야기의 상대는 자신한테 매우 잘 대해주었던 사람으로 20년 정도의 오랜 시간 동안 원인조차 모르는 병을 얻어 심한 고통을 느낀다고 말하고는 전화를 걸어 그 여인을 오게 했다.

오직 비구니 하나를 세상에서 얻기 위하여 여인의 병을 보아 주었다.
당시 여인의 병세는 상반신의 앞쪽이 거북등처럼 기운의 벽을 형성하고 있었다.
머리는 침을 잘못 맞아 뇌 신경의 파열 현상이 나타나고 있었다.

나는 여인에게 약속했다. 당신의 병은 15일 정도 경과 하고 나면 나타나지 않을 것이다. 그리고 비구니를 조금 도와주라고 말했다.

 

며칠 후 비구니는 나를 다방에 데리고 가서 질문을 하기 시작했다.
자신이 들고 다니던 노트를 꺼내어 반야심경을 해석한 내용을 읽었다.

나는 비구니의 질문 내용을 다 듣고 나서 놀랐다.
그 질문 속에 의식의 완성자가 있었기 때문이었다.

나의 대답은 흥분되어 있었다.

“그자도 해탈한 자다. 누구냐. 누가 그런 말을 할 수 있었단 말이냐.”

비구니는 내 말을 듣고 눈물을 흘렸다. 한참 동안 훌쩍거리고 나서 대답했다.

그 내용은 석가부처님의 말씀을 어떤 보살이 후세에 전한 것이라고 했다.

나는 안도의 숨을 쉬었다.

 

비구니는 다음날 내 집으로 찾아와서 제자가 되기를 청했다.

어느 날 제자 비구니가 물었다.

“선생님 이마가 왜 그렇습니까?”

나는 제자의 물음에 영문을 몰라 어리둥절해 했다.
그러자 제자는 나를 보고 거울을 보라고 했다.

불과 몇 시간 전까지만 해도 아무 이상이 없던 이마의 중앙부위에 반쪽 구슬을 붙여 놓은 것 같은 형상이 나타나 있었다.

나는 이런 일을 보고도 놀라지 않았다.
내 이마에 나타난 형상은 이미 인간들이 만들었던 성자의 상에서 볼 수 있는 진실의 눈이었기 때문이다.

다만 그런 일이 나타날 때 나 자신이 어떤 느낌도 느낄 수 없었다는 것뿐이다.

또 몇 달이 지나자 나는 머릿속이 열리는 일을 겪게 되었다. 그런 일은 그 후에도 몇 차례 더 일어났다.

머리가 열려지면서 열려진 머릿속으로 찬란한 빛들이 가득 차 있었고, 온몸과 의식에는 빛의 영향에 의하여 말로 표현하기 힘든 감동과 평화가 존재하고 있었다.

나는 내가 경험하게 된 일들을 제자에게 말했더니 제자는 내 말을 듣고, 자신이 책에서 읽었던 그런 일들에 대한 이야기를 해주었다.

 

세상일을 모를 때 자신감을 보였던 제자도 세상일을 보게 되자 힘이 드는 모양이었다.

제자가 내 속에 있던 일들과 같은 이야기를 했다. 이제 자신의 곁에는 나 한사람뿐이라고 말했다.

어떻게 된 일인지 가까이 지내던 모든 사람들이 불과 반년 사이에 너무 먼 사람들이 되고 말았다고 했다. 나는 그 말에 대해 이렇게 대답했다.

“내가 세상일을 보지 않았을 때 나는 많은 사람들로부터 신임을 받고 있었고, 수많은 사람들이 나의 주변에 있었다. 그러다가 내가 세상일을 보게 되고 세상일을 축복하려 하자 나의 곁에는 아무도 없었다. 나는 너 하나를 찾는데 3년 반이나 걸린 것이다.”

 

제자는 또 일 년쯤 지나서 이렇게 말했다.

자신은 나를 만나기 전에 많은 지식을 가지고 있었고 또 사람들로부터 그런 일에 대하여 인정을 받은 자라고 말했다.

그런데 지금 자신은 그렇지가 못하다고 했다. 도대체 무엇이 무엇인지 아무것도 모르겠다고 말했다.

나는 웃었다.

“모르는 것을 모르는 것은 당연한 것이다. 네가 모르는 것을 이제 보았으니
모르는 것을 모른다고 보지 못하는 사람들에 비하면 얼마나 큰 진전인가.

대부분의 사람들은 자신이 보지도 않고 경험한 적도 없는 일에 대하여,
모르면서도 모른다는 사실을 보지 못하고 살다가 죽게 된다. 바로 이것이 진실이다.”

 

나와 제자는 우리가 하는 일에 대하여 혼신의 힘을 다했지만,
우리의 곁에 왔던 사람들은 회의(懷疑)를 느끼고 돌아갔다.

제자가 그런 일을 보고 물었다.

“우리는 좋은 일을 합니다. 그런데 우리의 곁에 오는 사람들은 왜 자신들의 삶이 좋아지지 않고 힘들어졌다고 합니까?”

나는 그말을 듣고 이렇게 대답했다.

“좋은 수확을 얻고자 하는 농사꾼은 자신이 가꾸는 작물을 애쓰고 힘들여서 돌보게 된다. 그와 같은 것이다. 그들이 세상일을 모르고 나의 말을 들으니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다.”

 

- 계속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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