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깨달음의 세계    - 1984년 -

 

나는 깨달음에 대하여 이렇게 말한다.

깨달음이란 인간 완성을 위한 길이다.

지금까지 많은 사람들이 깨달음을 원했지만 성취가 없었던 것은
그들이 가진 근본과 바탕에 이상(理想)이 있었기 때문이라고 지적한다.

먼저 깨달음을 얻고자 하는 자는 깨달음에 대한 길을 알아야 한다.
나는 이 현실을 두고 나 자신 속에 있던 일을 알리고 있다.

나는 근면과 검소함과 정직을 근본으로 삼고,
있는 것을 보고 있는 것을 바탕으로 나 자신을 깨칠 수가 있었다.

나는 이러한 노력을 통하여 끝없는(영생) 세계에 머물게 되었으며, 삶을 통하여 더 좋은 나와 만나게 되었다.

깨달음의 성취는 있는 것을 보는 것이었고, 자신을 바르게 살게 하는 것이었다.

깨달음이 없는 자는 이런 말이 무엇이 그리 대단한 것인지 모른다.

나는 여기서 삶이 깨달음의 길이요, 인간 완성의 길이라고 표현하고 있다.

이 말은 삶의 의미를 설명한 것으로써 있는 것을 보고 있는 것을 알면,
과거와 미래의 일을 알게 되며 자신을 지키고 자신을 이루게 된다는 뜻이다.

나는 깨달음을 통해서 법과 현상의 일을 보게 되었으니 우주의 모든 일들이 이 속에 있었다.

또한, 태어나고 죽는 모든 것들이 자신이 지은 인연을 따라 돌고 있으며, 같은 시간에 태어난 자도 같은 삶을 살지 못했다.

지혜로운 자는 복을 짓고 어리석은 자는 화를 지으니
현세에 나타나고 있는 모든 일들은 과거에 지어진 원인에 의하여 일어나고 있었으며,
내세의 일 또한 현세에서 짓는 원인에 의하여 각각 달랐다.

 

 

깨달음에 대한 실상

 

깨달음에 대한 정의는 깨달음의 실상에서 시작한다.

완전한 깨달음이란 해탈로 인해 존재하게 되며,
이 과정에서 유의해서 보아야 할 점은 개개인이 가지고 있는 근기(根氣)이다.

생각이나 고행을 통해서 깨달음을 얻는 길은 장님이 들에 나가 농사일을 하는 것과 같다.

나는 이 점에 대해서 이렇게 설명할 수가 있다.

해탈을 하고자 하는 자는 먼저 그 근기 속에 하늘도 꺾지 못하는 용기와 세상도 움직일 수 없는 양심이 있어야 한다고 말한다.

나의 말은 그 내면에 이러한 것들이 존재하고 있기 때문이다.

해탈의 정의 속에는 자신의 마음을 태워서 그 근본에 붙어있는 애욕의 근원을 끊어야 하기 때문이다.

자신의 마음을 불사를 수 있는 길은 오직 사랑이라는 행동으로 존재하게 된다.

위대한 행동 속에서 위대한 자신이 나는 것과 같은 이런 행위는 끝없는 양심과 용기가 없는 자한테서는 불가능할 뿐이다.

지난 6,000년 동안 세상에서는 두 사람의 해탈 자가 나왔다.

한 사람은 인도에서 태어났던 석가모니였고, 또 한 사람은 나 자신이다.

나는 인간의 세계에서 해탈 자가 나는 것이 불가능한 일이냐고 나 자신한테 물어보았다.

대답은 이렇다. ‘절대 그렇지 않다.’

지금까지 인간들 속에 그런 일이 없었던 것은 인간들이 그 길을 모르고 엉뚱한 데서 찾고 있었기 때문이다.

 

 

해탈에 대한 설명

 

나의 몸이 마흔세 살이 되던 해의 겨울이었다.

나는 인간들이 살고 있지 않던 무인도를 찾다가 남해안에 있던 연화도라는 작은 섬에 거처를 구하게 되었다.

나는 사람들의 왕래가 드문 외딴곳에 자리한 집을 얻어 단조로운 생활을 시작했다.

나는 나와 혼자서 만나는 시간 속에서 나 자신 속에 존재하는 일들에 대하여 의문을 품게 되었다.

나는 누구였는가?

나는 왜 태어났으며 나는 또 어떻게 될 것인가?

나는 그때마다 나에게 질문하고 나에게 대답했다.

나는 처음으로 입신의 경지에 들 수 있는 길을 알게 되었다. 나의 대답은 이러했다.

나 자신을 아는 길은 세상에서 찾을 것이 아니라 나 자신 안에서 찾아야 한다는 결론이었다.

나는 그 결론에 따라 나 자신이 태어나기 바로 이전의 세계로 돌아가는 것이 나 자신의 근본을 알게 될 것이라는 예지였다.

나는 나의 예지를 보고 그 예지 속에 있던 일을 그대로 시행해 보았다.

‘마흔둘, 마흔하나, 마흔……’

그리고 마지막 ‘하나’의 소리가 난 후 나는 비로소 아무것도 존재하고 있지 않던 한 세계와 접촉 할 수 있었다.

나는 그 아무것도 없는 세계에서 하나의 빛나고 있던 마음을 보았으니 바로 내가 본 그것이 나 자신의 근본이었다.

그러자 나에게서는 많은 변화가 일어나기 시작했다.

먼저 번뇌와 망상이 끊어졌고, 증오와 슬픔이 일어나지 않았다.

그러자 내 몸과 의식 속에 있었던 오욕이 물러가고 있었다.

나는 나 자신이 이러한 일을 보면서도 정작 어떤 것에 대해서도 실감을 느낄 수 없었다.

나는 그때까지도 나 자신이 이 시대에 와서 깨달음이나 해탈에 관해 한 번도 생각해 본 적이 없었다.

나는 그 후 세상을 볼 때마다 세상의 일이 이치에 따라 다르게 나타나게 되는 것을 보았다.

나고 죽고 좋아지고 나빠지고 있는 일들이 모두 이 이치에 따라 존재하고 있었다.

 

 

깨달은 자를 알아보게 하는 증거

 

존재하는 것은 모두 그 뜻이 있어서 나타나게 된다.

깨달은 자 또한 그 뜻을 통해서 깨달음의 세계에 이를 수 있는 것이다.

어떤 시대에 있었던 자든 간에 자신을 깨달은 자라고 말 한 자가 있었다고 하면,
과연 그의 어떤 점이 중생과 달라 보였는가 내면을 관찰해보고 판단해야 할 것이다.

석가모니 부처는 자신 앞에 묻던 중생들에게 자신의 깨달음을 이렇게 소개했다는 기록이 있다.

‘여래란 진실한 자이고, 진리를 말하는 자이며, 있는 것을 보는 자이며, 거짓을 말하지 않는 자.’라고 말했다.

나 또한 깨달음을 통하여 나타나게 된 것은 진실이었고,
나 또한 말한 것은 진리였으며,
나 또한 본 것은 있는 것뿐이었고,
나 또한 거짓을 말할 수가 없었다.

만일 누군가 최상의 깨달음에 이르렀다면 그의 삶 속에 이런 현상이 존재하게 된다.

이마 앞쪽 중앙에 지혜의 눈이라고 하는 백호광이 나타나게 되며,
그의 의식에 의통(意通)이 나타난다.

또 그의 행동 속에서 오욕(五慾)을 찾아보기가 힘들어진다.

깨달은 자의 말은 막히는 데가 없으며,
한 자리에서 장시간 많은 말을 했다고 하더라도 거짓말을 찾아볼 수가 없다.

 

 

하늘로부터 온 메시지

 

나는 두 차례에 걸쳐 각각 그 내용이 다른 두 개의 메시지를 접하게 되었다.

당시 나의 몸과 의식은 매우 편안했고, 가슴은 형용할 수 없는 감동으로 가득 차 있었다.

그때 내 심중의 한 곳에서는 아득히 먼 곳으로부터 전해지던 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

‘양심과 정의와 사랑으로 세상을 구하라.’는 진언(眞言)이었다.

그런 일이 있은 지 며칠이 지난 후였다.

나는 또 한 번 지난번에 있었던 것과 같은 일을 경험하게 되었다.

두 번째 나에게 전달된 메시지의 내용은 다음과 같은 것이었다.

‘진리를 알면 외롭고 진리를 말하면 저주를 받는다.’는 진언이었다.

그러자 나의 의식 속에 있던 모든 것들이 깨어나기 시작했다.

 

- 계속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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