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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면 검소 정직으로 자기를 이루고

세상과 남을 축복하는 마음으로 자신을 태우는 것이

최상의 자기를 얻는 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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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戒).hwp

 

행계(行戒).hwp

 

 

· 1989년08월16일(수) 동대신동(달마원) 계(戒).mp3

· 1989년08월23일(수) 동대신동(달마원) 뜻.mp3

   참고자료 : 如來의 가르침>계(戒) -새 창으로 열립니다.-

   참고자료 : 學會報>戒 1,  2,  3,  4,  5,  6,  7,  8,  9,  10

 

· 1989년08월16일 계(戒).mp3           (22분4초)

· 1989년08월23일 뜻.mp3                 (19분53초)

 

· 계(戒) 설명.mp3                                (7분9초)

· 삶과 생활과 깨달음.mp3                    (8분6초)

· 깨달음과 근면 검소 정직.mp3            (1분15초)

· 근면 검소 정직이란.mp3                    (2분15초)

· 근면 검소 정직의 중요성.mp3            (2분30초)

· 근면 검소 정직, 액자.mp3                  (4분2초)

· 근면 검소 정직, 계의 결과.mp3          (5분44초)

 

 


 

 

저의 집 거실에 걸려있는 액자(주) 를 소개해 보았습니다.

(주) 이 액자는 제가 만든 액자입니다. 如來께서 나눠 주신 액자는 저는 가지고 있지 않습니다.

제 자녀들의 집 거실에도 같은 액자가 걸려있습니다.

다섯 개를 만들었는데 여분이 남았습니다.

이런 액자를 필요로 하는 사람을 더 만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누구든지 액자를 만들기 쉽도록 파일을 만들어 올렸습니다.

 

저는 如來의 정체와 그분의 말씀에 대하여 설명할 수 있는 자격을 엄격하게 구비한 안내인(guide)입니다.

이러한 안내인(guide)의 역할은 누군가가 하고 싶다고 해서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며 더군다나 어느 누구라도 함부로 해서는 절대로 안 되는 일입니다.

참고자료 : 1993년 1월 31일 장전동(찻집) 중에서.mp3  (1분15초)

저는 如來님에게서 안내인의 자격을 구비할 수 있었던 유일한 사람입니다.

다시 한번 말씀드려서 올바른 자격을 갖춘 사람은 저 한 사람밖에 없습니다.

만약 이 시대에서 누군가가 如來의 정체와 말씀에 대하여 설명하는 사람이 있다면, 如來님에게서 자격을 올바르게 구비했는지 쉽게 확인할 수 있어야 할 것입니다.

또한, 이 시대뿐만 아니라 다음 세상에서 누군가가 如來의 정체와 말씀에 대해 가르치는 자가 있다면 그자는 진위 여부를 막론하고 위선자(僞善者)가 틀림없습니다.

 


 

        

아래의 글은 제가 쓴 글이며 제 말이며 저의 견해(見解)입니다.

구도자(求道者)로서 깨달음을 추구하고 있는 분은 읽지 마시기 바랍니다.
구도자는 오로지 자기 자신의 힘과 노력으로 깨달으셔야 합니다.

如來의 계(戒)에 대하여 잘 알고 있는 분은 읽지 않는 것이 좋습니다.

읽는 분에 따라서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을 가능성이 있습니다.

읽는 분에게 30% 이상의 피해를 주게 될 가능성이 있습니다.

상대적으로 70% 이상의 도움을 주게 될 가능성이 있습니다.

읽기를 원하지 않는 분은 될 수 있으면 읽지 않는 것이 좋습니다.

읽는 중에 거부감이 들면 즉시 읽지 않는 것이 좋습니다.

아래의 글을 읽는 것은 읽는 분의 판단에 의한 선택일 뿐입니다.

아래의 글은 기록으로 전하기 위하여 작성한 것입니다.

 

 


 

제가 드리는 말씀을 읽기 전에 먼저 앞에 소개된 계(戒)와 행계(行戒)
그리고 如來님의 말씀 녹음을 여러 차례 듣고 읽어보시면 좋을 것입니다.

 

 

깨달음이 없이 좋은 자기를 만들어 낼 수가 없습니다.

 

깨달음이 없는 사람은

근면 검소 정직을 들어도 아무런 가치를 느끼지 않습니다.

 

생활을 통하여 자기의 영혼을 완성하게 되고

영혼을 통해서 미래를 얻게 되는 것입니다.

 

생활 속에서 자기를 변화시킬 수 있고

변한 자기를 통해서 행복한 삶을 즐길 수 있습니다.

 

깨달음이 필요한 이유는

자신을 좋은 자기로 변화시키고

자신이 불행에서 벗어나기 위해서입니다.

 

깨달음은 무지에서 벗어나는 것이고

깨달음이 없으면 무지에서 벗어날 수 없습니다.

 

이 시간을 통해서 세상일에 눈을 뜨게 되고

있는 일을 이해하게 되고 깨달음을 얻게 된다면

삶과 죽음과 태어남의 비밀이

자기 속에 있다는 것을 분명하게 알게 될 것입니다.

 

사랑이란 상대를 축복하기 위해서 내가 행하는 일입니다.

 

양심이 있는 사람은 정은 없어도 사랑을 베풀 수 있습니다.

양심이 없는 사람은 정은 있어도 사랑은 행할 수 없습니다.

 

깨달음이 없는 자에게 어떻게 사랑이 존재할 수 있나.

사랑이라는 말만 존재하지.

 

무지한 자는 정에 얽매이게 되고

깨달은 자는 옳고 그름에 얽매이게 된다.

 

여러분이 구원받는 유일한 길은 자기를 불사르는 일입니다.

업장 소멸은 자기를 태워라. 자기의 마음을 태워라.

진정으로 자식을 사랑해도 그 마음을 태울 수 있고

이웃을 사랑해도 그 마음을 태울 수 있고

세상을 사랑해도 그 마음을 태울 수 있습니다.

좋은 스승을 만나서 진정 배우고자 할 때도

그 마음은 탈 수가 있습니다.

바로 거기에서 업장 소멸이 오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자기의 좋은 생활을 위해서 여기 오고

자기의 소망, 그 영혼을 위해서 여기 오는 것입니다.

이런 일은 이 시대를 통하여 좋은 자기를 얻는 것이고

그 영혼을 통하여 끝없는 내세의 밝은 자기의 길을 만드는 것입니다.

 

이 험한 세상을 살아가면서

자기를 위해서 자신을 축복하는 데 삶을 바치도록 노력해야 합니다.

 

삶은 자기의 생활과 깨달음을 위해서 존재해야 합니다.

생활은 영혼을 만들어 줄 것이고

영혼은 끝없는 내세의 길을 열어줄 것입니다.

 

그러므로 먼저 깨닫지 않으면 올바른 생활이 존재하지 않는 것이고

생활을 소홀히 하면 깨달음 역시 붙잡기가 힘들 것입니다.

깨달음이 없이는 좋은 삶을 얻기가 매우 어렵습니다.

 

삶은 생활을 통해서 존재합니다.

깨달음이 바탕이라면 생활은 삶의 환경이 되는 것입니다.

생활을 통해서 좋은 자기를 만들어야 합니다.

 

깨달음으로써 좋은 마음을 얻게 되고,

좋은 마음을 얻음으로써 좋은 행동을 나게 하고,

좋은 행동을 나게 함으로써 좋은 결과를 얻게 된다.

이 좋은 결과 속에 자신은 언제나 남게 될 것이다.

 

<삶과 생활과 깨달음.mp3>

 

 


 

如來께서는 지난 25년간 실상(實相·있는 일)을 말씀하시고 강조하셨습니다.

그러나 지금 세상에는 인간 사회에는 사람들 마음속에는
실상(實相·있는 일)과는 너무나 크게 차이가 나는
생각·사상과 이념·주의와 과학(주) ·종교(주)
배우고 가르치고 있으며 또한 그것을 의지하고 따르고 있습니다.

(주) 과학(科學) : 보편적인 진리나 법칙의 발견을 목적으로 하는 체계적인 지식. 학문(學問).

(주) 종교(宗敎) : 신을 신앙하고 교리를 신봉하는 체계. 초인간적 세계에 대한 신념과 의례 등으로 구성된 문화 현상. 현대는 주술, 무속, 명상, 요가, 기공 등 초자연적 수련 행위 일체를 모두 종교에 포함한다.

그런 이유 때문에 如來께서는 25년 동안이나
실상(實相·있는 일)을 알아보려는 소망을 가진 자를 찾기 위해
온갖 고초를 마다하지 않고 최고 최상의 노력을 다하셨지만
돌아가시기 전까지 항상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습니다.

“아직까지 진정으로 깨달음을 얻겠다는 사람을 한 사람도 만나지 못했다.”

참고자료 : 1999년 3월 21일 동대신동(문화원) 중에서.mp3  (49초)

如來께서는 해야 할 일이 있을 때마다 “사람이 없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저는 如來님의 이런 말씀을 들을 때마다 고개를 숙이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저 자신부터 스스로 몹시 부끄러운 사실이었으며 또한
이 시대 인간 세상의 참모습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는 일이었기 때문입니다.

 

세상과 인류의 끝자락에서

如來를 우연히 만나서

如來의 주변을 맴돌다가

如來의 적극적인 대시(dash)(주) 를 받아서     (주) dash : 거세게 몰아치는 가르침의 충고.

자신을 바꿀 수 있는 기회를 가졌던 사람은 실제로 몇 사람 되지 않습니다.

 

겨우 그 몇 사람 중에서도 달랑 한 사람만이

쓰러졌다가 일어나기를 수차례 반복하던 막다른 지경에서

그 엄청난 dash를 차마 거부할 힘이 부쳐서 자신을 바꾸기로 한 때문에

나그네가 지고 있던 보물짐을 내려받아서 자신이 짊어질 수밖에 없었습니다.

 


 

 


 

 


 

如來께서 1989년 8월 16일 수요일 오후,

앞에 앉아 있는 몇 사람의 부인들에게 계(戒)를 주시면서 말씀하셨습니다.

 

“내가 이 시대에 맞도록 이 시대를 보고 계율을 만들었습니다.”

이 말씀은 우리가 중요하게 유념해야 하는 如來님의 당부입니다.

 


 

‘지계(持戒)’란 무엇입니까?

자신이 잘못된 말이나 행동을 함으로써
상대로 하여금 자신에게 원한을 가지게 해서는 안 된다는 것을 말씀하셨습니다.

 

맺힌 한은 그냥 언젠가 풀어지거나 없어지지 않습니다.

맺힌 한은 자신이나 상대가 잊어버린다고 해서 없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맺힌 한은 지금 생애를 마치더라도 없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맺힌 한은 다음 생애에서도 그대로 다시 나타납니다.

맺힌 한은 상대가 풀어주지 않는 한 없어지기가 어렵기 때문입니다.

맺힌 한은 오랏줄로 묶은 것처럼 자신의 평화와 자유를 구속하게 됩니다.

상대 마음의 한에 묶여버리면 자신이 평화와 자유를 얻는 일은 매우 어렵습니다.

 

 

그런데 계(戒)와 율(律)은 다른 거로 아는데 여기는 구별 없이 사용하네요?

그렇습니다. 계와 율을 구태여 구별해야 할 이유도 필요도 없기 때문입니다.

계와 율을 구별해서 잘 아시는 분은 그러한 계와 율을 열심히 익히시면 됩니다.

계와 율을 구별해서 가르치고 배우는 식자(識者)분들은 유식(有識)하기 때문입니다.

如來의 가르침자연의 가르침이며 자연진실과 진리는 유식하지 않습니다.

자연의 가르침을 배우고 익히고자 하는 분들은 유식할 필요성이 전혀 없습니다.

진리와 진실은 유식한 분은 절대로 결코 알아볼 수 없는 것이 세상의 법칙입니다.

아내 처 마누라 집사람은 같은 대상을 말한다는 如來님의 말씀을 기억합니다.

법칙 헌법 민법 법령 법규는 모두 법(法)이며 또한 법률(法律)이기도 합니다.

如來께서 주신 계는 ‘계(戒)’라고 불러도 되고 ‘계율(戒律)’이라고 불러도 됩니다.

’라고 해도 지계 경계 수계 행계의 뜻을 알아보려 노력할 것이고,

계율’이라고 해도 지계 경계 수계 행계의 뜻을 찾아보려 노력할 것입니다.

(戒)나 계율(戒律)은 어차피 같은 대상을 지칭할 뿐이기 때문입니다.

그래도 좀 불편하신 분은 이렇게 생각하면 편하실 것 같습니다.
전체를 말할 때는 (戒)라 하고
구분 지어 말할 때는 지계(持戒) 경계((警戒) 수계(修戒) 행계(行戒)라 하고
세부 내용을 말할 때는 계율(戒律)이라고 하면 됩니다.

그래도 자신이 익히 알고 있는 대로 계(戒)와 율(律)을 구별할 필요가 있는 분은
제발 더 이상 이 페이지를 읽지 말아 주시기를 신신부탁을 드립니다.

 


‘살생을 하지 말라.’

생명체를 함부로 죽이지 말라는 말씀을 하셨습니다.

 

살생(殺生)은 세상에서 원한을 사게 되는 가장 위험한 행동이기 때문입니다.

 

 

파리 모기를 죽이는 것도 살생입니까?

모든 생명체를 무조건 살해하지 말라는 말씀이 아닙니다.

원한을 사게 되는 살해를 하지 말라는 말씀입니다.

곤충을 죽여도 살생으로 인한 한이 지어지는 것입니까 라고 질문해야 합니다.

이 문제(問題)에는 확인해야 하는 변수(變數=있는 일)가 네 가지 있습니다.

곤충을 향한 자신의 ‘한의 유·무(有·無)’와 곤충의 한의 유무입니다.

‘한의 유·무(有·無)’란 어떠한 의도가 있었는지 없었는지를 말합니다.

각각의 변수에 따라 결과로써 한을 지을 수도 있고 짓지 않을 수도 있을 것입니다.

한을 짓게 되더라도 사람과 곤충 상호 간에 그 영향력은 미미하지 않겠습니까?

 

전쟁터에서 적을 죽이는 것도 살생입니까?

서로 죽고 죽이는 전쟁터에서도 살생으로 인한 한을 짓게 됩니까?

이 문제(問題)에는 확인해야 하는 변수(變數=있는 일)가 아주 많습니다.

전쟁을 일으킨 자가 누구인지. 적을 죽이도록 지시한 자가 누구인지. 적을 죽이는 자신의 ‘마음가짐’과 전쟁터에서 죽음을 맞는 자신의 마음가짐, 또한 자신을 죽이는 적의 마음가짐과 전쟁터에서 죽음을 맞는 적의 마음가짐, 자신의 가족과 적의 가족의 마음가짐 등입니다.

‘마음가짐’이란 어떠한 의도를 가졌는지 갖지 않았는지를 말합니다.

많은 변수(變數=있는 일)를 정확하게 입력해야 결과를 계산해 낼 수 있습니다.

죽이고 죽는 전쟁터에서 한을 짓게 될 수도 있고 짓지 않을 수도 있을 것입니다.

 

직업으로 동물을 도살하는 것도 살생입니까?

직업으로 동물을 도살하는 일도 한의 피해를 보게 됩니까?

이 문제(問題)에는 확인해야 하는 변수(變數=있는 일)가 여러 가지 있습니다.

어떤 동물이 왜 도살되는지? 도살되는 동물의 상태는 어떠한지? 동물을 어떻게 도살하는지? 동물을 도살하는 작업자의 마음가짐은 어떠한지?

변수(變數=있는 일)를 구체적으로 알아야 해답을 확실하게 말할 수 있습니다.

동물을 직업적으로 도살하는 이유만으로 자신을 망치지는 않을 것입니다.

살생의 한(恨)은 자신과 상대 사이에 원한 관계가 만들어져야 지어지게 됩니다.

 

교통사고로 죽거나 직업으로 일하다가 사고로 죽어도 한이 생깁니까?

사고(事故)는 인위적이 아닌, 즉 사전에 의도가 없이 일어난 일을 말하는 것이고
사건(事件)은 인위적인, 즉 사전에 의도가 있어서 일어난 일을 말하는 것입니다.

사고가 났는데 나중에 확인한 결과 사건인 사례도 있고
사건이 났는데 나중에 확인한 결과 사고인 사례도 있으며,
음주운전 사고처럼 사고와 사건의 요건이 겹쳐진 사례도 많이 있습니다.

사고를 당한 당사자의 사정에 따라 원한이 생길 수 있을 것입니다.

사고를 당한 당사자에게 원한이 생기지 않아도 가족에게 생길 수도 있을 것입니다.

사고냐 사건이냐에 따라 원한이 생기지 않거나 생기거나 할 것입니다.

원통하고 애통하다가 한은 생기지는 않고 차츰 잊힐 수도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문제에는 구체적인 ‘있는 일’을 입력해야 정확한 해답을 알 수 있습니다.

 

한을 짓는 것을 업을 짓는 것과 같은 뜻으로 이해하면 됩니까?

한(恨)을 짓는 것은 악업(惡業)을 짓는 것입니다.

한(恨)이 지어진 것은 악업(惡業)을 저질렀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한과 업이 같은 뜻을 가진 용어는 전혀 아닙니다.

업(業)이라는 용어는 ‘일(한 일, 하는 일, 할 일)’을 말합니다.

악업(惡業)은 자신이 자신에게 또는 상대에게 ‘잘못한 일’을 말합니다.

잘못을 저질렀기 때문에 한(恨)이 지어진 것입니다.

 


‘도둑질을 하지 말라.’

남의 재물을 훔치지 말라는 말씀을 하셨습니다.

 


‘거짓말을 하지 말라.’

남을 속이지 말라는 말씀을 하셨습니다.

 

자신도 분명히 그렇게 될 것으로 예상했고 믿었기 때문에 남에게 말했는데, 그 결과가 달라지고 틀려졌다면 결국 자신이 남을 속인 것입니다. 거짓말을 한 것입니다.

자신이 분명히 그렇게 들었고 보았기 때문에 상대에게 말했는데, 나중에 확인해보았더니 달랐다면 자신이 상대를 속인 것입니다. 거짓말을 한 것입니다.

자신이 분명히 맞는 말, 좋은 말이라고 믿어서 자신이 이해한 말을 조금 보태서 남에게 말을 전했는데, 훗날에 남이 그 말의 원본을 알게 되어서 보태진 말이 있는 것을 알아보게 되면 자신이 거짓말을 한 것이나 다름없게 되는 것입니다.

 

남에게 말을 할 때는 자신이 아는 데까지만 말해야 합니다.

남에게 말을 할 때는 자신이 잘 모르면 잘 모른다고 말해야 합니다.

확실히 모르는 것을 좀 아는 것처럼 말하는 것은 거짓말이 되기 일쑤입니다.

정확하게 알지 못하는 일을 잘 아는 일처럼 말하는 것은 거짓말이 되기 일쑤입니다.

 

사람들은 거짓말이 진실보다 더 믿음성이 있는 시대에 살고 있습니다.

사람들은 거짓말을 누가 더 진실처럼 말하는지 겨루기를 하고 있습니다.

진실을 아는 사람이 없어서 누가 거짓말을 하는지조차 알아볼 수 없습니다.

 


‘간음을 하지 말라.’

간통(姦通)을 하지 말라는 말씀을 하셨습니다.

 

상대가 승낙(주) 하지 않은 성추행 또는 성폭행을 하는 것은 간음에 해당합니다.

(주) 승낙(承諾) : 마땅하다고 인정하여 허락하는 것

 

 

생각이나 마음으로 한 것도 간음이라고 할 수 있습니까?

이 문제(問題)는 지계(持戒)의 계율과 아무런 관련이 없습니다.

이 질문은 수계(修戒)의 계율과 관련이 있습니다.

 


 

‘경계(警戒)’란 무엇입니까?

자신을 망치지 않는 길을 말씀하셨습니다.

자신을 구하는 길을 말씀하셨습니다.

 

자신의 잘못된 마음과 행동으로 인하여
자신이 자신에게 또는 남에게 한을 갖게 하는 일을 조심하라는 말씀을 하셨습니다.

 


‘아부를 경계하라.’

자신이 남에게 함부로 아부를 하는 것을 특별히 조심하라는 말씀을 하셨습니다.

자신이 남의 아부를 함부로 받아들이는 것을 특별히 조심하라는 말씀을 하셨습니다.

 

이 시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이 가장 싫어하는 것은 ‘자존심’을 건드리는 일입니다.

그래서 이 시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은 ‘자존심’을 부추기는 것을 좋아합니다.

그래서 이 시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이 가장 좋아하는 것은 ‘아부’입니다.

‘아부’란 무엇입니까? 듣기 좋은 말을 하는 것을 ‘아부’라고 합니다.

틀려도 맞는다고 해주는 말.

자신을 인정해주는 말.

자신을 격려해주는 말.

자신을 칭찬해주는 말.

자신을 치켜주는 말.

자신과 맞장구쳐주는 말.

자신의 실수를 감싸주는 말.

자신의 단점을 감싸주는 말.

자신의 결점을 감싸주는 말.

자신의 잘못을 감싸주는 말.

자신의 부족한 점을 감싸주는 말.

자신의 무능력을 감싸주는 말.

자신의 문제점을 감싸주는 말.

아부’를 구별할 줄 모르고 싫어하지 않는 사람에게 필요한 보약은 ‘충고’입니다.

 

아부와 교만

아부는 아편과 같고

교만은 독약과 같다.

 

충고와 겸손

충고는 보약과 같고

겸손은 보석과 같다.

 


‘교만하지 말라.’

아부를 구별할 줄 모르고 아부를 싫어하지 않는 사람은 ‘교만’한 사람입니다.

 

열 번 겸손하다가도 한 번 실수하게 되면 결국 ‘교만’한 사람이 됩니다.

아무리 능력이 뛰어난 사람이라도 교만해서는 결국 성공할 수가 없습니다.

 


‘요구하지 말라.’

남이 자신을 인정해주기를 원하는 것은 ‘요구’입니다.

남이 자신에게 무언가 해주기를 바라는 것은 ‘요구’입니다.

 

남에게 요구할 것이 아니라 자기 자신에게 더 큰 분발을 요구해야 합니다.

 


‘원망하지 말라.’

아부와 교만과 요구를 잘하는 사람은 남에게 ‘원망’을 잘합니다.

 

남을 원망할 것이 아니라 양심과 지혜가 부족한 자기 자신을 원망해야 합니다.

 


 

‘수계(修戒)’란 무엇입니까?

수계(修戒)의 다섯 가지 계율을 오욕(五慾=다섯 가지 욕망)으로 지칭하셨습니다.

수행자(修行者)(주) 가 닦아야 할 마음과 행동을 말씀하셨습니다.

(주) 수행자(修行者) : 수행이 필요한 사람. 수행을 하는 사람.

 

지계(持戒) 경계(警戒) 행계(行戒)를 지키는 일에 곤란을 느끼는 사람을 두고,
마음과 행동을 닦아야 할 필요가 있는 사람 즉 수행자(修行者)라고 말합니다.

올바른 생활인으로서 부족한 사람은 특별히 수계(修戒)를 명심해야 할 것입니다.

수계(修戒)는 행계(行戒)를 제대로 지키지 못하여 남에게 인정을 받지 못하거나 생활이 건실하지 못하거나 생활에서 자신감이 부족한 사람에게 꼭 필요한 계입니다.

행계(行戒) 중에서 한 가지 계율이라도 제대로 지켜지지 않는 사람은 그 원인과 이유를 수계(修戒)의 오욕(五慾)과 경계(警戒)의 네 가지 계율에서 찾을 수 있습니다.

일상생활에서 삶의 성공과 평화를 가지지 못하는 사람은 수계(修戒)의 오욕(五慾)을 특별히 유념하여 자신 속에서 그 원인과 이유를 찾아야 합니다.

지계(持戒) 경계(警戒) 행계(行戒)를 잘 지키는 사람은 수계(修戒)의 다섯 가지 계율을 특별히 유념하지 않아도 적절히 잘 조절할 수 있는 사람입니다.

 


‘명예를 탐하지 말라.’

오욕(五慾) 중에서도
첫 번째 명예욕(名譽慾)은
이 시대를 살아가는 모든 사람이 가장 유념해야 하는 욕망(慾望)입니다.

명예욕(名譽慾) 중에서도 가장 유념해야 할 첫 번째는 자존심(自尊心)(주) 입니다.

(주) 국어사전 - 자존심(自尊心) : 남에게 굽히지 아니하고 자신의 품위를 스스로 지키는 마음. pride.

 

유교적인 사회 한반도에서는 자존심(自尊心)을 전혀 잘못 알고 있습니다.

자존심(自尊心)은 남에게 자신을 굽히지 않는 마음이 아닙니다.

자존심(自尊心)은 남에게 자신의 품위를 스스로 지키는 마음이 아닙니다.

자존심(自尊心)은 프라이드(pride)가 아닙니다.

 

훌륭한 삶을 살고 또한 큰 깨달음을 얻고자 하는 자가 가장 두려워해야 할 대상은
자존심(自尊心)을 내세워서 남에게 자신을 굽히지 않으려는 명예욕(名譽慾)입니다.
프라이드(pride)를 내세워서 남에게 자신의 품위를 지키려는 명예욕(名譽慾)입니다.

 

유교적인 사회 한반도에서 가장 무서운 위력을 가진 대상이 명예욕입니다.

자존심과 프라이드를 최고의 명예로 여기는 사람들이 대부분 살고 있습니다.

자존심과 프라이드를 건들면 사생결단의 무지막지한 보복을 당하게 됩니다.

괘씸죄(주) 의 발동이 바로 그것입니다.

(주) 괘씸죄 : 개인이나 조직의 자존심(自尊心·pride)을 손상시키면 받게 되는 적대감.

 

자존심을 조절하지 못하면 지계(持戒)와 경계(警戒)를 지키기가 어려울 것입니다.

자존심을 적절히 조절하지 못하는 사람은 행계(行戒)를 지키기가 어렵습니다.

자존심을 잘 조절하지 못하는 사람은 깨달음을 얻기가 어렵습니다.

 

자존심(自尊心·self-respect)은 자신이 자신에게 굽히지 않는 마음입니다.

자존심(自尊心·self-respect)은 자신이 자신에게 품위를 지키는 마음입니다.

 

자존심(自尊心·self-respect)은 자신이 자신을 소중하게 여기는 마음입니다.

자존심(自尊心·self-respect)은 자신이 자신을 이롭게 돕는 마음입니다.

자존심(自尊心·self-respect)은 자신이 자신을 존중(尊重)하는 마음입니다.

 

자존심(pride)을 내세우는 사람은 명예욕(名譽慾)이 큰 사람입니다.

자존심(pride)을 내세우는 사람은 무지한 사람입니다.

자존심(pride)을 내세우는 사람은 부족한 사람입니다.

자존심(pride)을 내세우는 사람은 교만한 사람입니다.

자존심(pride)을 내세우는 사람은 어리석은 사람입니다.

 

자존심(self-respect)이 뛰어난 사람을 두고 ‘훌륭한 사람’이라고 말합니다.

 


‘물질을 탐하지 말라.’

재물욕(財物慾)에 빠지지 말라는 말씀을 하셨습니다.

 

재물욕에 마음을 빼앗기면 지계(持戒)와 경계(警戒)를 지키기가 어려울 것입니다.

재물욕을 적절히 조절하지 못하는 사람은 행계(行戒)를 지키기가 어렵습니다.

 

이 시대는 물질(物質)이 인간의 삶을 좌지우지하는 만능(萬能)의 시대입니다.

세계를 휩쓸고 있는 제4차 산업혁명은 인간이 인간의 힘에 의지하던 일들을
물질의 힘에 의지하게 함으로써 인간을 나약한 존재로 만들어 버리고 있습니다.

과학(科學)은 자연의 자원을 이용하여 눈부신 물질문명은 만들어낼 수 있었지만
그 결과로써 자연과 인간세계에는 파멸적인 재앙을 안겨다 주게 된 것입니다.

 

특히 우리 사회는 역사상 유례가 없는 물질문명에 대한 탐욕을 경쟁하고 있습니다.

전 세계에서도 유별나게 물질문명에 대한 탐욕을 내세우는 우리 사회입니다.

 


‘색을 탐하지 말라.’

색정욕(色情慾)에 빠지지 말라는 말씀을 하셨습니다.

성욕을 억제하거나 없애 버린다면 자신과 인류는 존재하지 않게 될 것입니다.

향락(享樂)(주) 에 빠지지 말라는 말씀을 하셨습니다.

(주) 향락(享樂) : 욕망을 누리는 즐거움.

색정(色情)과 향락(享樂)은 밀접한 관계가 있습니다.

 

색정욕(色情慾)은 남성 여성 이·동성 간의 애정과 관련된 모든 행위를 말합니다.

색정(色情)에 빠진다면 지계(持戒)와 경계(警戒)를 지키기가 어려울 것입니다.

색정을 적절히 조절하지 못하는 사람은 행계(行戒)를 지키기가 어렵습니다.

 

우리 사회는 정욕(情慾)의 향락산업(享樂産業)이 지나치게 번창한 사회입니다.

 

 

생각이나 마음으로 하는 것도 간음이라고 할 수 있습니까?

생각이나 마음으로 정욕에 빠지는 것도 색을 탐하는 것입니까?

그렇습니다.

정욕에 관한 생각과 마음으로 정신이 산란한 것은 색을 탐하기 때문입니다.

‘간음’은 자신의 행위로 인하여 상대에게 원한을 갖게 하는 일이고
‘색을 탐하는 것’은 자신의 행위로써 자신에게 피해를 주게 되는 일입니다.

생각과 마음의 행위라도 자신뿐만 아니라 상대에게 피해를 주는 사례도 있습니다.
자신의 생각이나 마음으로 어떤 특정인을 정욕의 대상으로 했을 경우
만약 자신과 특정인 사이에 의식이 연결되게 되었다면
자신뿐만 아니라 상대에게도 알 수 없는 불편을 주게 될 수도 있습니다.
물론 아무런 변화가 없을 수도 있습니다.

자신이 어떤 특정인을 대상으로 정욕을 품는 것은 좋지 않은 일입니다.

음란물을 대상으로 성욕을 해결하는 것도 색을 탐하는 것입니까?

어떤 사람이 어떤 것을 대상으로 어떤 욕구를 어떻게 해소하는지 확인해야 합니다.

모든 문제(問題)는 확실한 숫자가 입력될 때만 정확한 해답이 나올 수 있습니다.

입력된 변수(變數)에 따라서 색을 탐하는 것이 될 수도 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음란물이 상식 수준인 경우도 있지만, 비상식적인 경우도 많이 있기 때문입니다.

행위가 상식 수준인 경우도 있지만, 비상식적인 경우도 많이 있기 때문입니다.

행위가 지나치면 자신의 마음과 몸에서 그 피해를 직접 느끼고 보게 됩니다.

정욕에 사로잡혀서 이성을 잃고 돌발적인 실제 행동을 내보임으로써 자신을 창피하게 만드는 사례가 언론에 종종 소개됩니다.

 


‘술을 탐하지 말라.’

음주욕(飮酒慾)에 빠지지 말라는 말씀을 하셨습니다.

향락(享樂)에 빠지지 말라는 말씀을 하셨습니다.

음주(飮酒)와 향락(享樂)은 밀접한 관계가 있습니다.

 

음주(飮酒)에 빠진다면 지계(持戒)와 경계(警戒)를 지키기가 어려울 것입니다.

음주를 적절히 조절하지 못하는 사람은 행계(行戒)를 지키기가 어렵습니다.

 

우리 사회는 전 세계적으로 주탐(酒貪)에서 최고 우위를 다투는 사회입니다.

 


‘고기를 탐하지 말라.’

육식욕(肉食慾)에 빠지지 말라는 말씀을 하셨습니다.

향락(享樂)에 빠지지 말라는 말씀을 하셨습니다.

가효(佳肴·嘉肴)(주)향락(享樂)은 밀접한 관계가 있습니다.

(주) 가효(佳肴·嘉肴) : 값비싼 안주. 호화 요리.

 

가효(佳肴·嘉肴)에 빠진다면 지계(持戒)와 경계(警戒)를 지키기가 어려울 것입니다.

가효를 적절히 조절하지 못하는 사람은 행계(行戒)를 지키기가 어렵습니다.

 

우리 사회는 식탐(食貪)이 크게 대접을 받고 대유행을 하고 있는 사회입니다.

 

 


사람은 누구나 금욕을 해야 하나요? 깨닫기 위해서는 금욕이 필수적인가요?

귀하께서는 수계(修戒)를 크게 잘못 알고 있습니다.

귀하께서는 수계(修戒) 다섯 가지 내용을 좀 더 자세히 읽어보셔야 할 것 같습니다.

如來께서 누구나 금욕(禁慾)(주) 하라는 말씀을 하신 적이 전혀 없습니다.

(주) 금욕(禁慾) : 욕망을 억제하고 금지하는 것.

누구나 금욕을 해 버리면 세상과 인류는 누가 지켜나갈 것입니까?

수행자(修行者)에게조차도 금욕을 말씀하신 적이 전혀 없습니다.

지계 경계 행계를 제대로 지키지 못하는 사람을 수행이 필요한 사람이라 말하며,
수행자는 일정 기간 오욕을 절제(節制)(주) 하면서, 탐하거나 빠지지 않고 적절히
잘 조절할 수 있는 사람이 되기 위한 수업을 하라는 말씀을 하셨습니다.

(주) 절제(節制) : 지나치지 않도록 알맞게 조절하여 제한하는 것.

인간은 찬란하게 빛나는 자연의 모든 혜택을 누리고
오욕을 즐기면서 평화롭게 살 권리를 가지고 있는 만물의 영장(靈長)입니다.

그리고 깨닫기 위해서 금욕을 하는 것은 전도망상(顚倒妄想)입니다.

전도망상(顚倒妄想)이란 실상(實相)·있는 일을 두고 거꾸로 생각하는 것입니다.

깨닫기 위해서 금욕을 하는 사람은 시간이 갈수록 자신의 몸에 이상이 생기거나
마음에 다른 기운을 느끼고 결국은 황폐해져 가는 자신의 모습을 보게 될 것입니다.

금욕을 해서 깨닫는 것이 아닙니다. 깨달으면 오욕을 탐하지 않게 됩니다.

다시 말해서 금욕을 해서 깨닫겠다는 생각은 정확하게 전도망상입니다.

오욕과 금욕에 관심이 많으신 귀하께서는 혹시 행계에 자신 없는 분이신가요?

그렇다면 먼저 행계를 주목해서 더 열심히 배우고 익히시기 바랍니다.

 

저는 오욕이 거의 없어진 것 같습니다. 깨달아 가고 있는 걸까요?

귀하께서는 수계(修戒)를 잘못 알고 있습니다.

귀하께서는 수계(修戒) 다섯 가지 내용을 좀 더 자세히 읽어보셔야 할 것 같습니다.

완전한 깨달음을 이룬 분께서는 오욕이 없어진 것이 아닙니다.
다섯 가지 욕망에 이끌리지 않는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이를 두고 오욕이 물러갔다거나 오욕에서 멀어졌다고 표현하셨습니다.

如來께서는 자존심을 내세우신 적이 단 한순간도 없으셨습니다.
如來께서는 검소하셨으며 축재에 관심이 없으셨습니다.
如來께서는 색정에 관심이 없으셨습니다.
如來께서는 음주를 하신 적이 없으셨습니다.
如來께서는 주식으로 밥 국 찬, 면류 그리고 생수를 드셨습니다.

정상적인 사람이 오욕을 억제(억지로 통제)하면 마음이나 몸에 탈이 나게 됩니다.

만약 인간에게 오욕이 없어져 버리면 생존이 가능하지 않게 됩니다.

만약 인간에게 오욕이 없어져 버리면 인간 사회가 존재하지 않게 됩니다.

정상적인 사람은 일상생활에서 오욕을 자유롭게 조절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러므로 귀하께서 정말 오욕이 없어졌다면 생활인으로서 크게 잘못된 것입니다.

 

저는 깨달음을 얻기 위해 수행을 하며 수계를 엄격하게 지켰습니다.

귀하께서는 수계(修戒)를 잘못 알고 있습니다.

귀하께서 수행(修行)을 구도(求道)로 착각하고 있는지 모릅니다.

귀하께서 수행자(修行者)를 구도자(求道者)로 착각하고 있는지도 모릅니다.

누구든지 구도자로서 수행자의 마음을 가져야 한다면 틀린 말은 아닙니다만
오욕(五慾)을 멀리하는 것만이 구도자의 길은 전혀 아닙니다.

귀하께서 수계(修戒)를 잘 지킬 수 있다면 이제 행계(行戒)를 잘 지키는 일에 도전할 수 있는 자격이 갖추어지신 것 같습니다.

큰 깨달음을 얻기 위한 구도자(求道者)에게 실제로 필요한 것은 행계(行戒)입니다.

행계(行戒)에 자신 있는 분이라면 수계(修戒)는 자유롭게 조절할 수 있습니다.

물론 당연히 지계와 경계도 힘들이지 않고 잘 지킬 수 있습니다.

 


 

명예탐(名譽貪) 물탐(物貪) 색탐(色貪) 주탐(酒貪) 식탐(食貪)

자연과 인간세계를 파멸로 이끌고 있는 대표적인 현상입니다.

 


 

‘행계(行戒)’란 무엇입니까?

사람으로서 성공적인 삶을 살고 평화로운 삶을 누리고
자신이 자신을 축복함으로써 큰 깨달음을 이루어서
자신의 미래를 자유롭게 선택할 수 있게 하는 을 말씀하셨습니다.

또한, 구도자로서 큰 깨달음을 이루고자 하는 사람에게 필요한 계율입니다.

 

일상생활에서 성공과 평화를 느끼지 못하는 사람은
행계(行戒)를 올바르게 지키지 못하고 있는 사람입니다.

행계(行戒)를 올바르게 지키지 못하는 사람은 수행(修行)이 필요한 사람입니다.

수행(修行)이 필요한 사람은 수계(修戒)의 다섯 가지 계율을 잘 지켜야 합니다.

수행(修行)이 필요한 사람은 지계(持戒)와 경계(警戒)를 잘 지켜야 합니다.

 


‘충고를 잊지 말라.’

국어사전에
"충고 : 남의 결함이나 잘못을 고치도록 타이르거나 일러 줌. 또는 그런 말. 충언."
이라고 되어 있습니다.

인류 역사를 돌이켜보면
충언·충고로 인하여 죽음을 면하지 못한 사례가 너무나 많습니다.
임금과 신하의 관계뿐만 아니라 보통사람 사이에도 충언·충고는 위험한 말입니다.

성인(聖人)의 예를 들면
소크라테스는 그분이 하신 충언·충고로 인한 결과로써 독물을 마셔야 했으며
예수는 그분이 하신 충언·충고로 인한 결과로써 악랄한 극형을 당해야 했습니다.

如來께서 말씀하셨습니다.
“사람들은 충고를 가장 싫어한다.
충고를 들으면 자존심이 상해서 괘씸하게 여기고, 충고를 들으려 하지 않고, 충고하는 사람을 탓하고, 충고하는 사람을 응징하고, 충고하는 사람을 벌한다.”

如來께서는
충언·충고의 위험성에 대해 누구보다 잘 알고 계심에도 불구하고
자연 속에 존재하는 모든 살아있는 의식체들을 두고
눈뜬장님’이라는 위험한 충고를 25년 동안 어디서나 누구에게나 하셨습니다.

‘있는 일을 앞에 두고도 보지 못하는 눈뜬 의식 장님을 깨우는 일’은
충고를 하지 않고는 이루어 낼 수 없는 일이었기 때문입니다.

如來께서는 25년 동안 주변 사람들에게 갖가지로 기상천외한 충고를 하셨습니다.

如來께서는 위험한 말씀보다 해프닝(happening)(주) 을 적극 활용하셨습니다.

(주) 해프닝(happening) : 예상하지 않은 일. 별일. 우발 사건. 엉뚱한 상황.

如來 주변에 있던 사람들이 1992년 11월에 실상학회(實相學會)를 결성하고 나서

그로부터 만 일 년이 되던 1993년 11월이 되자
如來께서는 주변 사람들을 축복하기 위하여 특별한 해프닝을 마련하셨습니다.

如來께서 활동하신 25년 동안 상대와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고 수없이 벌어졌던
기상천외한 충고 해프닝 중에서도 가장 대표적인 ‘K 자매 성추문 사건’입니다.

如來께서는 주변 사람들을 깨우치기 위하여 몸을 사리지 않는 퍼포먼스(주)
갖가지 사건을 만들어 내어서 장님의 잠을 깨우려 쉼 없이 애쓰셨습니다.

(주) 퍼포먼스(performance) : 자신의 의사를 신체를 활용하여 나타내어 보여 주는 행위.

최상의 지혜로 如來께서 손수 마련하셨던 ‘가르침의 충고 해프닝’의 성과로써
如來께서는 눈뜬장님들로부터 그나마 작은 해코지밖에 당하지 않으셨습니다.

만약 말씀으로 충고를 하셨다면 如來께서 온전히 살아남기가 어려웠을 것입니다.

 

누가 감히 나를 가르치려 하는 거냐?

 

충고는 조언이 아닙니다. 조언은 충고가 아닙니다.

충고는 아부의 반대편에 있는 말입니다.

충고는 대단히 위험한 말입니다.

충고는 해서는 안 되는 말입니다.

충고는 하면 크게 당하는 말입니다.

충고는 각오하고 해야 하는 말입니다.

충고는 원수를 맺는 말입니다.

 

충고는 무시하고 싶은 말입니다.

충고는 안 듣고 싶은 말입니다.

충고는 듣기 싫은 말입니다.

충고는 짜증이 나는 말입니다.

충고는 신경질이 나는 말입니다.

충고는 성이 나는 말입니다.

충고는 화가 솟구치는 말입니다.

 

충고는 남의 생각일 뿐입니다.

충고는 나와 상관없는 남의 말일 뿐입니다.

그러므로 충고한 남과 사생결단을 내고 싶습니다.

 

제가 쓴 글을 여기까지 읽으신 분께서는
제가 여러분에게 서슴없이 쏟아내는 충고의 말씀들을
일방적으로 무차별로 듣고 계시는 중입니다.

 

니까짓게 어따대고 가르쳐?

네까짓 게 어디다 대고 가르쳐?

너 따위가 누구 보고 가르친다는 거냐?

 

그렇더라도
이 시대를 사는 사람들에게 가장 필요한 덕목(德目)(주)
남이 해주는 충고를 내가 소중히 간직하는 일
입니다.
(주) 덕목(德目) : 양심의 마음가짐.

 

如來께서 말씀하셨습니다.

“남의 충고를 나의 깨달음의 길로 삼아라.”

 


‘겸손을 잊지 말라.’

국어사전에
"겸손 : 남을 존중하고 자신을 낮추는 태도가 있음."이라고 되어 있습니다.

이 낱말 풀이는 유교적인 사회 한반도에서만 통용되는 내용인 것 같습니다.

겸손이란 남을 존중하는 것이 전혀 아닙니다. 이는 유교적인 잘못된 생각입니다.

겸손이란 나를 낮추는 것이 전혀 아닙니다. 이는 유교적인 잘못된 생각입니다.

 

겸손은 남에게 자존심을 내세우지 않는 것입니다.

겸손은 남에게 자존심을 굽히는 것입니다.

겸손은 상대를 섬기는 것입니다.

겸손은 남을 함부로 대하지 않는 것입니다.

겸손은 남을 자신처럼 대하는 것입니다.

겸손은 상대를 차별하지 않는 것입니다.

겸손은 상대를 이기려고 하지 않는 것입니다.

 

교만한 것은 겸손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거만한 것은 겸손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갑질을 하는 이유는 겸손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남녀에 차별이 있는 것은 겸손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부부에 차별이 있는 것은 겸손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체통을 내세우는 것은 겸손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권위를 내세우는 것은 겸손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배우지 않은 자를 업신여기는 것은 겸손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가지지 않은 자를 업신여기는 것은 겸손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위정자가 사람 위에 군림하는 것은 겸손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공직자가 사람을 함부로 대하는 것은 겸손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직위와 계급을 내세우는 것은 겸손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직업으로 귀·천(貴·賤)한 자를 구별하는 것은 겸손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연장자가 연소자에게 연세를 내세우는 것은 겸손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선배가 후배에게 서열을 내세우는 것은 겸손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들이 겸손하지 않은 이유는 무지(無智)(주) 하기 때문입니다.

(주) 무지(無智) : 지혜가 없음.  -양심이 없기 때문입니다. 지혜와 양심은 같습니다.

그들이 겸손하지 않은 이유는 무지(無知)(주) 하기 때문입니다.

(주) 무지(無知) : 배운 것이 없음.  -잘못 배웠기 때문입니다.

 

겸손하지 않은 사람은 절대로 결코 남을 사랑할 수 없습니다.

 


‘근면을 잊지 말라.’

부지런하게 힘써서 일하는 것입니다.

행동이 앞서고 열심히 하는 것입니다.

생각과 말만 앞세우지 않는 것입니다.

 

자신의 힘으로 자신을 책임지는 생활을 하는 것입니다.

남에게 기대지 않고 자신이 해결하는 것입니다.

남에게 맡기기보다 자신이 직접 하는 것입니다.

손쉽고 편하게 생활하기보다 어렵고 힘들게 생활하는 것입니다.

눈치 보지 않고, 솔선수범(주) 하는 것입니다.

(주) 솔선수범(率先垂範) : 남보다 앞장서 행하여 남의 모범이 되는 것.

 

나태하지 않고 열심히 하는 것입니다.

게으르지 않고 부지런한 것입니다.

소극적이지 않고 적극적인 것입니다.

수동적이지 않고 능동적인 것입니다.

 


‘검소를 잊지 말라.’

검소란 자신이 검소하는 것입니다.

있는 것을 함부로 사용하지 않는 것입니다.

넉넉하지만 아껴서 사용하는 것입니다.

 

물질을 알맞게 가지는 것은 검소한 것입니다.

음식을 적당하게 먹는 것은 검소한 것입니다.

자원을 소중하게 다루는 것은 검소한 것입니다.

자연을 소중하게 대하는 것은 검소한 것입니다.

 

아껴서 모으기만 하는 것은 검소가 아닙니다. 욕심입니다.

넝마 옷을 입고 해진 신발을 신는 것은 검소가 아닙니다. 옹색한 것입니다.

궁색한 것은 검소가 아닙니다. 가난하고 부족하고 없는 것입니다.

인색한 것은 검소가 아닙니다. 버릇이거나 습성일 뿐입니다.

 

아무리 검소해도 자신의 품격과 품위에 어울려야 합니다.

아무리 검소해도 써야 할 곳에는 잊지 않고 빠짐없이 쓸 줄 알아야 합니다.

검소하느라 써야 할 곳을 알지 못하고 쓸 줄 모르는 것은 철이 없기 때문입니다.

 


‘정직을 잊지 말라.’

국어사전에
"정직(正直) : 마음에 거짓이나 꾸밈이 없이 바르고 곧음."이라고 되어 있습니다.

영어사전에
"honesty : 고결, 성실, 솔직, 공정."이라고 되어 있습니다.

국어사전은 낱말의 뜻풀이가 맞지 않는 것이 워낙 많기 때문에 예사롭지만

영어사전은 낱말의 뜻풀이가 맞는 것이 제법 있는데 아쉽게도 정직은 틀렸습니다.

 

정직(正直)이란 무엇입니까?

정직(正直)은 낱말의 한자(漢字-중국의 글자)에 해답이 그대로 나타나 있습니다.

‘바를 정(正)’은 ‘바른 것’을 말합니다. 마음속에 ‘바른 것은 양심’입니다.

‘곧을 직(直)’은 ‘곧은 것’을 말합니다. 마음속에 ‘곧은 것은 용기’입니다.

정직(正直)은 양심과 용기를 뜻하는 한자 두 개가 합쳐진 복합어(複合語)입니다.

정직(正直)이란 올바른 양심과 굳센 용기를 말합니다.

 

정직한 말은 양심과 용기가 함께 해야 할 수 있는 말입니다.

정직한 행동은 양심과 용기가 함께 해야 할 수 있는 행동입니다.

 

양심은 있어도 용기가 없으면 정직한 것이 아닙니다.

용기는 있어도 양심이 없으면 정직한 것이 아닙니다.

정직한 사람은 지혜가 있고 정의감(正義感)이 있습니다.

 

자기 자신을 속이지 않는 것은 정직한 것입니다.

남을 속이지 않는 것은 정직한 것입니다.

자기 자신과 한 약속을 지키는 것은 정직한 것입니다.

남과 한 약속을 지키는 것은 정직한 것입니다.

 

옳은 일은 서슴없이 하지만 옳지 않은 일은 하지 않는 것은 정직하기 때문입니다.

해야 할 일을 보면 외면하지 못하는 것은 정직하기 때문입니다.

남의 무지를 보면 외면하지 못하는 것은 정직하기 때문입니다.

남의 불행을 보면 외면하지 못하는 것은 정직하기 때문입니다.

세상의 불의를 보면 외면하지 못하는 것은 정직하기 때문입니다.

 

정직(正直)은 지계(持戒) 경계(警戒) 수계(修戒) 행계(行戒)의 계율을
전부 잘 지키는 사람에게 갖추어지게 되는 ‘
최상의 영예이며 자격’입니다.

지계(持戒) 경계(警戒) 수계(修戒) 행계(行戒) 열일곱 가지 계율을 잘 지켜서
‘올바른 양심과 굳센 용기’를 갖춘 사람으로 거듭나게 된 것입니다.

만약 ‘올바른 양심과 굳센 용기’가 없다면
지계(持戒) 경계(警戒) 수계(修戒) 행계(行戒)의 계율을 지킬 수가 없는 것입니다.

‘정직을 잊지 말라.’는 말씀이
열여덟 가지 계율의 맨 마지막에 나오는 이유는

(戒)의 최종적인 목적지정직(正直)이기 때문입니다.

(戒)를 잘 지키는 사람은 정직(正直)한 사람이 됩니다.

정직(正直)한 사람은 계(戒)를 잘 지키는 사람입니다.

 

정직이 없다면, 양심과 용기가 없다면, 지혜도 정의도 존재하지 않는 것입니다.

양심과 용기, 지혜와 정의가 없다면, 세상에는 사랑이 존재하지 않는 것입니다.

세상에 사랑이 없다면 한순간에 지구는 생명체가 존재하지 않는 별이 될 것입니다.

그러므로 (戒)대자연과 인간세계를 구하고 지키는 약속입니다.

 

 

지금 시대에서 정직하게 살면 손해만 생기는 것 아닙니까?

그렇습니까? 정직이 무엇인지 잘 아시는지요?

곧고 바르기만 한 것이 정직일까요? 아닙니다. 그렇지 않습니다.

곧고 바르게 살면 손해라고 말하는 것은 지혜가 없기 때문입니다.

나 혼자만 꼿꼿이 살아도 지혜가 있으면 손해 볼 일이 없습니다.

정직은 지혜와 같은 말이라 해도 틀린 말이 아닙니다.

정직한 사람은 양심과 정의감과 용기가 남다를 것입니다.

정직한 사람은 지혜가 있고 양심과 용기가 있어서 손해가 생길 일이 없습니다.

 


 

계가 나온 지 30년이 넘었네요? 실상학회 회원은 계를 잘 압니까? 계를 잘 지킵니까? 계의 결과가 궁금해서 물어봅니다.

말씀을 듣고 나서 정신 차리고 주변을 살펴보니 현실은 그렇지가 않습니다.

계(戒)는 1989년 8월에 如來께서 말씀하셨지만
아무나 짓고 누구나 읊는 계율이 너무 흔한 시대여서 그런지 몰라도
如來님의 계율도 대부분 유야무야(有耶無耶)(주) 되고 잊혀져 가는 중입니다.

(주) 유야무야(有耶無耶) : 있는지 없는지, 옳은지 그른지 흐리멍덩함. 흐지부지하게 처리함.

사실은 지난 30년 동안 계를 익히기는커녕 까맣게 잊어버리고 살고 있습니다.

거기다가 如來님 계율의 최종 목적이 되는 근면 검소 정직은
우리 사회에 흔하고, 모르는 사람이 없고, 지키지 않는 사람이 없어서

근면 검소 정직의 계율 때문인지는 몰라도
나머지 14가지 계율도 시시해지고 벌써부터 관심 밖이 되어 버렸습니다.

세상에는 근면 검소 정직을 모르는 사람이 아무도 없는데
如來께서만 사람들에게 근면 검소 정직을 잊어버리지 말라고 외치신 겁니다.

그러하므로 지금은 계(戒)에 관해 관심을 가진 자도 아는 자도 없는 형편입니다.

 

지계 4가지, 경계 4가지, 수계 5가지, 행계 5가지 계율이 서로 중복되는 것 같은데요?

그렇습니다. 계율에 대해 자세히 알지 못하면 중복되는 것처럼 보일 수 있습니다.

그러나 계율을 자세히 분석해 보면 전혀 중복되어 있지 않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한 가지 부연하고 싶은 말씀은
지계 네 가지, 경계 네 가지, 수계 다섯 가지, 행계 다섯 가지, 모두 열여덟 가지 계율은 구조적으로 복합적이고 역학적인 관계로 서로 빈틈없이 연결되어 있습니다.

한 가지를 더하면 다른 한 가지도 함께 더해지거나 덜어지게 되고
한 가지를 덜하면 다른 여러 가지도 함께 덜어지거나 더해지게 되는 것입니다.

如來께서 주신 계율을 자세히 읽고 음미하는 것만으로도 축복이 될 것입니다.

 

지계, 경계, 수계, 행계, 모두 18가지 계율이 많고 복잡해서 외우기 어렵고 하니까 쉽게 요약을 해서 외우면 좋을 것 같은데요?
예를 들면 지계는 살생, 도둑질, 거짓말, 간음을 하지 말라-처럼 한 줄로요.

참 좋은 아이디어입니다.

그렇게 해도 계율 하나하나를 잘 알아보고 잘 지킬 수 있다면 괜찮지 않겠습니까?

그런데 제가 지금 말씀을 듣는 중에 벌써 운율이 있는 노랫가락처럼 들립니다.

如來의 가장 중요한 말씀이 노랫소리처럼 들린다면 소홀하기가 쉬워질 것 같습니다.

자유로이 공개되어 있는 자연의 가르침 내용을 누군가가 읽고 들어보고는
교과 내용을 요약하듯 항목별로 깔끔하게 정리해 놓은 것을 본 적이 있습니다.

대단히 매우 죄송한 말씀을 드릴 수밖에 없습니다만,
如來 말씀을 요약하신 분께서는 이 시대에서 이미 위선자(僞善者)가 되셨습니다.
그리고 또한 다음 시대에서 위선자가 되기를 예약하신 것이나 다름없습니다.
-위선자(僞善者)를 포기하시는 방법은 지금이라도 당장 삭제하시면 됩니다.

개인적으로 자신만 보는 용도로 요약하는 것은 괜찮을지 몰라도
인터넷으로 공개하는 것은 철부지보다 더 철없는 매우 위험한 행위입니다.

특별한 이유가 없다면(오타 수정하기. 개인적인 용도로만 사용하기 등)
자연의 가르침은 고치거나 요약해서는 절대로 안 됩니다.

그 이유는 단순합니다. 핵심 내용이 틀림없이 변질되기 때문입니다.

의식 장님이 어떻게 진리와 진실을 볼 수 있다는 것입니까?
의식 장님은 거짓에 익숙하고 거짓에 길들어져 있기 때문에
진리와 진실을 거짓으로 바꾸고 고쳐야 내용이 딱 맞는 것으로 느껴집니다.

의식이 깨어 있지 않은 눈뜬장님은 참과 거짓을 절대로 구별할 수 없는 것입니다.

어떤 이유로도 결코, 글자 한 자 바꾸거나 빼거나 더하거나 하지 마시고
내용을 있는 그대로 사용·활용하시는 것이 가장 정당하고 올바른 것입니다.

 

액자에 근면 검소 정직이 적혀있는 것은 이 세 가지를 잘 지키라는 거지요?

근면 검소 정직을 잘 알고 질문을 하시는 건지,
아니면 전혀 모르고 질문을 하시는 건지 종잡을 수가 없습니다.

근면 검소 정직은 계의 마지막 부분에 있는 계율입니다만
계의 목적이 되기 때문에 근면 검소 정직만 지킬 수는 없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근면 검소 정직을 올바르게 지키려면
지계 경계 수계 행계 모두를 잘 지켜야 가능하다는 결론이 나올 것입니다.

그러므로 액자에 근면 검소 정직을 적은 것은
계의 목적을 뚜렷하게 나타냄으로써
지계 경계 수계 행계 열여덟 가지 계율을 잊지 말고 항상 유념하라는 뜻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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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계(持戒)는 ‘하지 말라.’ 이고

경계(警戒)도 ‘하지 말라.’ 이고

수계(修戒)도 ‘하지 말라.’ 인데,

그런데 행계(行戒)는 왜 ‘잊지 말라.’ 일까요?

 

지계(持戒) 경계(警戒) 수계(修戒)는 해서는 안 되는 일을 말씀하셨지만
행계(行戒)는 해야 할 일을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지계(持戒) 경계(警戒) 수계(修戒)의 해서는 안 되는 일을 하지 않아야
행계(行戒)의 해야 할 일을 해낼 수가 있습니다.

만약 행계(行戒)의 해야 할 일을 제대로 해내지 못한다면 그 이유는
지계(持戒) 경계(警戒) 수계(修戒)의 해서는 안 되는 일을 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결국 행계(行戒)의 계율 다섯 가지는 결코 잊어서는 안 되는 일이 되는 것입니다.

 

지계(持戒)를 잘 지킬 수 있는 사람은 이제 경계(警戒)를 지키시면 됩니다.

지계와 경계를 잘 지킬 수 있는 사람은 이제 수계(修戒)를 지키시면 됩니다.

지계와 경계와 수계를 잘 지킬 수 있는 사람은 이제 행계(行戒)를 지키시면 됩니다.

행계(行戒)를 잘 지킬 수 있는 사람은 지계와 경계와 수계를 잘 지키는 사람입니다.

그러므로
지계(持戒) 네 가지, 경계(警戒) 네 가지, 행계(行戒) 다섯 가지 계율 중에서
한 가지 계율이라도 올바르게 잘 지켜지지 않는 사람은

수행자(修行者)의 마음가짐으로 수계(修戒) 다섯 가지 계율에 도전하셔야 합니다.
물론 수행자로서 경계(警戒)와 지계(持戒)의 계율에도 계속 도전하셔야 합니다.

 


 

如來께서 말씀하셨습니다.

“나의 가르침은 이 시대의 가르침과는 정반대였습니다.”

그래서 더욱 이 시대를 위해서 꼭 필요한 가르침입니다.

 

자연의 가르침의 내용은 이 시대와 전혀 맞지 않습니다.

그래서 더욱 이 시대를 위해서 꼭 필요한 가르침입니다.

 

자연의 가르침은 인간들이 머물고 있는 대자연의 기본질서를 말하고 있습니다.

대자연의 기본질서란 바로 세상의 법칙을 두고 말하는 것입니다.

 

이 시대의 대자연과 인간 사회는 이미 걷잡을 수 없는 상태에 이르러 있습니다.

어느 누구도 대자연을 정상(正常)으로 회복하는 일은 불가능합니다.

어느 누구도 인간세계를 본연(本然)으로 되돌리는 일은 불가능합니다.

 

‘사랑’이라는 말이 무슨 의미를 가졌는지 아는 사람이 아무도 없습니다.(주)

그렇지만 사랑이라는 말을 사용하지 않는 사람은 한 사람도 없습니다.

(주) 아내가 곁에서 ‘나는 아는데, 사랑이란 축복하는 것입니다.’라고 말했습니다. 내가 ‘100점 만점에 3점’이라고 했습니다. 아내가 왜 100점이 아니냐고 항의를 했습니다. ‘그 말은 如來께서 하신 말씀을 당신이 베껴서 말한 것이므로 사실은 빵점이지만, 틀린 말은 아니니까 3점이라도 준 것이다. 만약 당신이 처음부터 알고 말했다면 30점 정도는 줄 수 있다.’ ‘아니 왜 30점밖에 안 돼요? 如來님 말씀인데?’ ‘시험 문제의 해답을 미리 가르쳐 주는 스승은 없다. 해답을 가르쳐 줬다면 스승이 아니다. 무엇을 사랑이라고 해야 하는지 진실을 아는 사람이 없다.’

 

‘정직(正直)’이라는 말이 무슨 의미를 가졌는지 아는 사람이 아무도 없습니다.

그렇지만 정직에 대해서 모른다는 사람은 한 사람도 없습니다.

 

이 시대 인간세계는 참으로 ‘이상한 앨리스의 나라’가 아닐 수 없는 것입니다.

의미도 모르고 아무렇게나 말해도 적당히 살아갈 수 있는 세상은 정상이 아닙니다.

 

대자연을 정상으로, 인간세계를 본연으로 되돌리는 좋은 방법이 있습니다.

처음으로 돌아가서 새로 시작하는 것입니다.

순수한 대자연에서 순수한 인간세계를 새로 살아가는 것입니다.

이 시대에서 ‘자신을 바꾸는 일’은 매우 시급하고 중요한 일입니다.

 

자신을 바꾸기 위해서, 스스로 깨닫기 위해서

누구든지 지금 당장 실천하고 도전해야 하는 중요한 약속’이 있습니다.

 

如來께서 말씀하셨습니다.

“근면 검소 정직이 최고의 도다.”

 

(道)’란 도리 이치 방법 즉 ‘약속된(정해진) 길’을 말하는 것입니다.

 

근면 검소 정직은 자신을 구할 수 있는 최상의 약속된 길입니다.

근면 검소 정직은 자신을 바꿀 수 있는 최고의 정해진 길입니다.

 

근면 검소 정직으로 자신의 생활이 바뀌어야 합니다.

먼저 좋은 생활을 통해서 좋은 마음이 생겨나야 합니다.

이 좋은 마음을 통해서 생활에서 깨달음도 가지게 됩니다.

결국, 좋은 생활이 없다면 깨달음도 없는 것입니다.

 

如來께서 말씀하셨습니다.

“깨달음으로써 좋은 마음을 얻게 되고,

좋은 마음을 얻음으로써 좋은 행동을 나게 하고,

좋은 행동을 나게 함으로써 좋은 결과를 얻게 된다.

이 좋은 결과 속에 자신은 언제나 남게 될 것이다.”

 

좋은 생활과 깨달음, 깨달음과 좋은 생활은 이와 같이 서로 맞물려 있습니다.

 

여래님, 사람은 왜 사는 것입니까?

“깨닫기 위해 사는 것이다. 깨달음은 처음부터 사람들의 최고의 관심사였다.”

 

깨달음으로써 인간은 자신이 바라는 모든 것을 얻을 수가 있기 때문입니다.

 


 

이제 如來께서 주신 계(戒)에 대한 저의 견해(見解)를 정리하고자 합니다.

 

(戒)는 자신이 지켜서 자신을 구속하는 명령이 아닙니다.

(戒)는 인간이 가야 할 길이며 곧 깨달음의 길입니다.

(戒)는 자신을 축복하고 자신을 자유롭게 하는 약속입니다.

 


 

미래 세상을 위하여 이 시대의 진실을 정직(正直)하게 말합니다.

변화기를 앞두고 인간세계를 구하고자

如來께서 친히 세상에 오셨으되

지상에는 깨달음을 원하는 자는 여럿 있었지만

진정으로 진리를 구하는 자는 단 한 사람도 없었습니다.

어쩔 수 없이 如來의 말씀과 행적을 이곳에 이와 같이 전하고 있습니다.

 

존재하는 살아있는 의식체들은 여기 있는 내용을
글자 한 자 바꾸지 말고, 더하지 말고, 빼지 말고,
있는 그대로 틀림없이 미래 세상에 전달하실 것을 간곡히 당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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