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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여행

 

1988년 4월, 나는 혼자서 일본으로 가는 여객선에 몸을 실었다.

아는 자도 없고 말도 통하지 않는 곳으로 기대 하나만으로 여행을 떠난 것이다.

그나마 여객선 안에서는 말을 나눌 상대도 있었으나 막상 배가 오사카의 부두에 닿자 나는 혼자가 되었다.

입국 수속을 하던 관리가 내가 내민 입국신고서를 보더니 알아들을 수 없는 말로 지적을 했다. 나는 무슨 말인지 알아듣지를 못해서 고개를 저었다.

그제야 내가 일본말을 모른다는 사실을 안 세관원이 손가락으로 글자를 가리켰다.
나는 한국말로 “당신이 좀 적어 주시오.” 하면서 손짓을 했다.

그러자 일본 세관원은 자신의 손으로 틀린 글자를 정정하더니 여권에 입국 도장을 찍어 주었다.

나는 그때부터 눈치 하나로 말도, 글자도, 길도 낯선 타국의 도시를 여행하게 되었다.

처음 2일간은 오사카의 중심부로 들어가서 숙소를 정하고 길을 익히는 데 허비하고 말았다.

3일째 되던 날, 오사카의 사천왕사 역 근처 거리에서 등불을 켜놓고 앉아 있었다.
몇 시간이나 꼼짝 않고 길가에 앉아 있어도 말을 걸어오는 자도 나의 행색에 관심을 가지는 자도 없었다.

결국, 나에게 제일 먼저 말을 걸어온 사람은 일본 경찰이었다.

정복 차림의 경찰 2명은 나의 곁에 와서 일본말로 한참 동안 하다가 다시 영어로도 했는데 나와 대화가 통하지 않자 수화로 의사를 전달해 왔다.

먼저 여권을 보자고 했고 돈을 가졌느냐고 물었다. 나는 나의 소개와 세상일에 대한 일본어로 된 팸플릿을 보여주었다.

그들은 글을 읽어보더니 도로에서는 안 되니 다른 곳으로 자리를 옮기라고 했다.

어디에 가서 앉아 있으면 되겠냐고 물어보았으나 그들은 나의 말을 한마디도 알아듣지 못했다.

다음날, 나는 오사카의 본 역이 있던 혼마치 역 근처에 앉아 있었다. 그리고 그곳을 지나던 사람들에게 팸플릿을 나누어 주었다.

거기서도 얼마 지나지 않아서 지하철역 직원이 나타나서 다른 곳으로 옮기라고 나를 일으켜 세웠다.

나는 이제 어떻게 해야 할 것인지 난감해서 한쪽 어깨에는 가방을 메고 한 손에는 등불을 든 채 길도 모르는 거리를 걸었다.

나의 기대는 자꾸만 빗나가고 있었다. 나는 다시 방법을 바꾸기로 하고 먼저 오사카 주재 한국영사관으로 찾아가서 문화담당 영사의 면회를 신청했다.

그런데 몇 시간이 지나도 면회는 이루어지지 않았다. 할 수 없이 그곳을 나오면서 재일거류민단 소재지와 전화번호를 전화교환원에게 물어 알아내었다.

말이 통하지 않는 곳에서 길을 물어 찾아가는 것도 쉬운 일이 아니었지만, 막상 그곳 사람들을 만나고 나면 서운한 마음과 외로움을 더욱 느끼게 했다.

안내자를 구할 수 없겠느냐고 물으면 모두가 한결같이 돈을 요구했다.
세상을 위하여 인간의 삶 속에 가장 소중한 길을 전하려 하는 나의 기대는 어디서도 이루어지지 않았다.

겨우 한 사람의 통역사를 구해서 방송국과 신문사를 돌아다녔으나 단 한 곳에서 나의 말에 대해 관심을 보였다. 그것도 그 자리에서 결정적인 대답을 한 것이 아니고 자신의 파트너와 상의해서 통보하겠다고 했다.

나의 말을 통역했던 젊은 청년은 일을 끝내고 나서 내가 통역비를 주자 돈을 받지 않으려고 했다.

그 청년은 막상 나를 만나고 보니 비즈니스 관계로 일본에 온 사람도 아니요, 관광 온 것도 아닌 터에 어떻게 돈을 받겠느냐고 사양했다.

그러나 나는 약속을 이행하는 것은 당연하다고 하면서 돈을 건네주었다.

청년은 나보고 저녁을 먹고 들어가겠느냐고 해서 나도 그럴 참이라고 대답했다.

청년과 나는 번화가 한 편에 있던 작은 분식점으로 들어가서 일본 사람들이 즐기는 라면을 먹었다.

내가 값을 내려고 하자 청년은 나의 손을 잡으며 이번에는 자신이 약속을 지키는 것이라고 했다. 청년은 지하철 타는 곳을 가르쳐 주었다.

나는 그의 손을 잡으며 다시 만날 수 있기를 바란다는 말을 남기고 숙소로 돌아왔다.

낯선 땅에서 겪는 어려운 일은 한두 가지가 아니었다.
방을 비운 사이에 내 옷 속에 감추어 두었던 현금이 감쪽같이 없어진 것을 알고 당황하지 않을 수 없었다.

나는 숙소 관리인에게 통하지 않는 한국말로 나에게 일어난 일을 설명했지만, 그도 역시 내가 알아듣지 못하는 일본말로 응답하니 누구를 붙들고 더 할 방법이 없었다.

나의 여행은 온갖 고초 끝에 17일 만에 끝을 내게 되었다.

그런데 또다시 문제가 남아 있었다.
일본 사정에 어두웠던 나는 일본의 5월은 공휴일이 많다는 사실을 모른 채 한국으로 돌아가기 위해 부두에 도착하니 부산을 떠날 때 구매해간 승선표에 명시된 배가 없었다. 여객선 회사의 일정표에 의하면 배는 그 시간에 부두에 있어야 했다.

나를 태우고 온 일본인 택시기사는 말을 알아듣지는 못해도 눈치를 채고 있었다. 차를 세워두고 공중전화 부스에서 여객선 회사에 전화를 했다. 전화기에서는 응답이 없었다.

부두에는 출입문이 닫혀있었고 배는 영영 보이지 않았다. 딱하게 된 사람은 나뿐만이 아니었다.

말도 통하지 않고 길도 모르는 자를 승객으로 태우고 있던 택시기사는 나를 그대로 태운 채로 요금 미터기를 '0'으로 돌려놓고 달리기 시작했다.

택시기사는 어느 지하철역까지 나를 태워주고는 비행장까지 가는 길을 손짓·발짓 그리고 한자를 써서 상세하게 설명해 주었다.

나는 그 친절한 택시기사 덕분에 부산으로 돌아올 수 있었다.

 

내가 일본을 보고 와서 소연에게 이렇게 말했다.

“나는 세상의 모든 위선을 이길 것이다. 그리고 용기와 소망을 가진 자를 찾아서, 영원한 생명과 평화가 있는 축복의 길을 사람들에게 있게 할 것이다.”

그러자 소연이 나에게 말했다.

“나는 여래를 만난 지가 일 년이 되어갑니다. 그런데 나는 지금 아무것도 아는 것이 없습니다. 내가 당신을 보기 전에는 사람들이 나를 총명한 자로 보아주었고 나 역시 남보다 뒤떨어지는 일을 한 적이 없습니다.”

나는 그 말을 듣고 말했다.

“너도 대단한 발전을 했다. 네가 아무것도 아는 것이 없다는 것은 바로 모른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이제 너는 많은 것들을 알게 될 것이다. 이제 너는 다른 사람들을 만나게 되면 그들은 모른다는 사실을 모르고 살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될 것이다. 그러므로 너는 그들 속에 가장 뛰어난 자가 된 것이다.”

며칠 후 나는 소연에게 그런 사실을 확인시켜 주었다.

나는 소연에게 그동안 자신이 알던 덕 있는 사람들을 찾아가서 나에게 들었던 사실들을 물어보게 했다.

그러나 소연은 그들 중에서 누구도 쉽게 대답하는 자가 없었다고 했다.

 

소연은 나의 뜻대로 다시 영어공부를 하기 시작했다.
승려가 되기 전에 중학교 영어교사를 한 경력이 있으므로 대담한 그의 성격을 보태면 몇 개월 후에는 보편적인 의사는 충분히 전달할 수 있는 영어 실력이 될 것이다.

 

나는 한국주재 외국 대사들 앞으로 편지를 썼다. 나 자신을 있는 그대로 표현하면 아무도 회답을 주지 않을 것 같아서 나 자신을 ‘자연을 연구해온 과학자’라고 소개했다. 편지 속에는 이렇게 썼다.

「나는 자연의 일을 연구해온 과학자입니다. 나는 나 자신의 관찰과 연구에 의하여 매우 유익한 정보들을 얻게 되었습니다. 구체적으로 말하면, 인간이 가지고 있는 정신과 질병의 관계를 설명할 수 있으며, 인간 개개인이 가진 정신을 통하여 그들이 지니고 있는 질병을 치료해 줄 수 있고, 그 정신을 이용하면 남의 몸에 있는 질병마저도 치료해 줄 수 있다는 사실을 입증해 보일 수 있습니다. 나는 인류가 갖고 있는 문제에 대하여 매우 정확한 정보를 알고 있으며, 삶과 죽음과 태어남의 비밀이 자신으로 인하여 이어지게 되는 새로운 사실들을 소개할 수가 있습니다. 나는 나의 이러한 일이 이 시대에 살고 있는 모든 사람에게 도움이 될 수 있기를 기대하며, 귀국의 형제들과 토론 연수 활동을 통해서 교류가 이루어질 수 있도록 대사님의 배려를 요청하는 바입니다.」

 

실제로 나는 인간들이 바라는 모든 일에 대하여 가장 큰 도움이 될 수 있었다.
그러나 인간들은 나의 기도를 들어주지 않았다.

20통이 넘는 메시지는 각국의 공관으로 부쳐졌지만, 회신을 준 곳은 단 한 곳이었다. 스위스 대사관에서 스위스 베론의 인간과학학회의 주소를 알려준 사실뿐이었다.

나는 그 주소로 나의 소개와 교류가 있기를 원한다는 메시지를 보냈지만, 답신은 영영 오지 않았다. 며칠 동안 가지고 있던 나의 기대도 사라지고 말았다.

나는 자신이 하는 일이 얼마나 중요한 일인가를 생각하면서 아침이 밝아오면 모든 것을 잊은 채 본능적으로 서둘렀다. 그러다가도 자신을 보면 눈앞이 캄캄했다. 그러면 또다시 자신을 잊어버리려고 몸부림쳐야만 했다.

 

“인간들은 자신이 깨어지는 것을 두려워한다. 그러나 성자는 자신이 깨어지는 일을 생각하지 않는다.”

이 말은 내가 소연에게 전하던 말이다.

그래서 나는 이런 말을 자주 했다.

“나는 계란으로 바위를 깨려는 자이다. 그러므로 나는 쉽게 나의 일이 성공하리라고는 보지 않는다. 그러나 나는 세상을 놀라게 할 것이다. 수천 번 수만 번 수십만 번이라도 나 자신이 깨어져서 단 한 사람의 인간을 깨울 수 있다면 그것은 성공으로 보아야 할 것이다.”

 

소연은 나의 형편을 잘 알고 있어서 자신의 수입 중에서 대부분을 나에게 주었다.
그런데 소연의 한 달 수입이라는 것도 정확하게 말하자면 십만 원 남짓이었다.

그 돈을 가지고 두 사람이 일을 하다 보니 궁색하기는 마찬가지였다. 그러나 소연은 용케도 잘 참았다.

나는 그런 소연에게 걱정을 안겨주었다. 이번 겨울에 인도를 여행하겠다는 나의 말에 벌써부터 경비가 걱정이 되는 모양이었다. 그는 돈을 구할 데가 없다고 했다.

그래서 나는 이렇게 말했다.

“나는 우리 자신의 일로 여행하고자 하는 것이 아니다. 그런데 왜 경비를 걱정하고 있느냐? 우리가 세상을 위하여 얼마나 도움이 될 수 있을 것인지 그런 일에 걱정하라.”

 

하루는 소연이 내 집으로 찾아왔다.
그는 아침에 있었던 일을 이야기했고 나에게 그를 도와줄 수 있는가 하고 물었다.

그래서 나는 그런 부탁은 나에게 말하지 말라고 했다. 그러나 아무도 그런 일을 해결할 자가 나타나지 않는다면 내가 도와주겠다고 했다.

나는 세상일을 보고 나서 모든 재앙이 자신의 잘못에 의해서 오게 된다는 것을 알게 되었으며 자신의 잘못을 깨닫지 못할 때 그 일을 해결해 주면 그로 인하여 더 큰 화를 짓게 된다는 인과의 법을 알기 때문이었다.

그자가 가진 무지와 그 무지의 욕망으로 인하여 귀신을 청하게 된 것이며 귀신도 그자의 곁을 떠날 수가 없고 그자도 귀신을 뗄 수가 없었다. 그러므로 그자가 머무는 곳이면 어디서든 죽은 자가 따라다니므로 그 기운으로 인하여 잦은 풍파가 생기게 되어 있었다. 그자가 그런 일을 해결하기 위하여 소문난 무당집을 찾아다녔고 또 사람들이 시키는 데로 절집을 찾아다녔으나 그자는 오랫동안 그 일을 해결하지 못하고 소연에게 부탁한 것이다. 그자는 처량한 표정으로 자신의 문제가 해결되지 않으면 집을 나가겠다고 했다는 것이다.

나는 소연에게 15일 동안 그자를 관찰해 보라고 했다. 그래서 그자가 자신의 무지를 깨우치기 위해 노력하고 깨달은 일들을 다른 사람들에게 전하는 일을 하겠다고 한다면 나는 그자를 도와줄 수 있지만 그렇지 않다면 나에게 원하지 말라고 일러 주었다.

다음날부터 그자는 매일 아침마다 소연이 있는 절에 와서 기도를 하고 인사를 하고 갔다고 했다. 그러다가 2주가 지나자 15일 정도 지켜본 후에 도와주겠다는 말을 한 것을 빌미로 소연에게 떼를 썼다.

나는 소연이 그자로부터 시달림을 받는다는 이야기를 듣고 재차 다짐을 받게 했다. 그자는 소연에게서 나의 말을 듣고 처음에는 망설이다가 급한 마음에 무턱대고 그러겠다고 말했다. 그래서 나는 그의 부탁을 들어주었다.

그자는 문제가 해결되자 다시는 찾아오지 않았다. 그리고 그자는 나와 그렇게 다짐했던 약속도 잊어버리고 말았다.

나는 그런 일을 볼 때마다 내가 하는 일이 안타까웠다. 아무리 애를 쓰고 도와주어도 자신이 원하는 것이 해결되면 한 번쯤 찾아와서 인사 한마디 하는 사람이 드물었다.

실제로 나는 그동안 세상일을 하면서 병원에서 고쳐지지 않아 애를 먹는 여러 사람의 병을 고쳐준 적이 있었다. 그러나 그들 중에 몇 사람을 제외하면 모두가 한결같이 더욱더 멀어져 버린 사실들이다.

내가 그들을 보고 배울 수 있었던 것은 인간의 대부분이 속이는 자 앞에서는 후해도, 속이지 않는 자 앞에서는 인색하게 변한다는 것이다.

나는 이런 세상일을 볼 때마다 더욱더 외로움을 느꼈다. 진실이 통하지 않는 세상에서 진리를 말해야 하는 외로움을 누가 아는가. 그런데도 나는 나를 알지 못하는 모든 자를 위하여 그들을 깨울 방법이 있어야 했다.

 

나는 그동안 내 마음을 보고, 남기고 싶었던 글을 모아 둔 것을 소연에게 주었다.

소연은 그 원고지를 받아가더니 정리를 해서 다시 가지고 왔다.

그래서 나는 이렇게 말했다.
“이글은 훗날 매우 값진 것이 될 것이다. 그래서 나는 이글을 너에게 주고 싶다.”

며칠이 지나자 소연으로부터 그 원고를 보게 된 한 독지가가 찾아왔다. 그리고 출판비용을 대주겠다고 제의했다.

그러나 막상 책을 만들어 놓고 보니 그 책은 또다시 창고 속에 쌓아 두게 되었다.

 

세상을 두고 자신을 이긴 양심과 용기.
절망 속에 빠진 인간을 두고 바친 사랑과 고뇌.
진실이 없는 자 앞에서 진리를 말해야 하는 사명.

그래서 나는 그 책의 제목을 「나그네」라고 하게 했다.

「나그네」는 책이 되어서도 갈 곳이 없었다.

소연은 ‘돼지 앞에 진주를 주지 말라.’고 한 예수의 말을 인용했다.

습기 찬 창고에 쌓인 채 쥐들의 도전을 받아야 할 책들을 앞에 두고 나는 생각했다.

‘저 책이 마모되어 없어질 때쯤이면 인간들도 저 속에 있는 가치를 알게 될 것이다.’

 

딱한 것은 시간은 흘러가는데 나는 제자리에서 맴돌고 있는 것 같았다.
나는 나에 대한 일에는 생각할 겨를이 없었다.

나 자신이야 어떻게 되든 큰 문제가 아니었다.
나에게 오직 급한 것은 세상의 일이었다.
그런데도 부딪치면 부딪칠수록 해결책이 보이지 않았다.

 

그래서 나는 더욱더 세상을 일깨울 수 있는 방법을 찾아야 했다.
나는 그 길을 찾아 어디든지 갔다.

다행한 일은 그때도 나에게는 희망이 있었다.
어려움이 닥치면 하늘은 보이지 않는 신들을 시켜서 나의 일을 도와주었다.

 

- 계속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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